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2024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세계에 HBM을 만드는 기업이 3개 있는데 그중 2개가 한국 기업”이라며 “HBM 역량을 우리 자신과 동맹의 필요를 위해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미국 정부가 대중국 HBM 수출 규제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첨단 AI 메모리칩과 이를 만들기 위한 장비가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동안 미 상무부는 “미국의 국가 안보와 기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하는 위협 환경을 지속 평가하고 수출 통제를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밝혀왔는데 이날 차관 발언은 이런 전망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이 같은 조치가 현실화하면 중국에 반도체 수출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매출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각각 약 32조원, 8조6000억원 매출을 거뒀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약 2배로 증가한 것이다. 상반기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중은 삼성이 22%, SK하이닉스는 30% 수준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수출 규제 강화 전에 두 회사의 HBM을 사재기한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중국 화웨이와 바이두 같은 기술 기업이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비해 삼성전자의 HBM을 비축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규제 범위가 어디까지일지도 중요하다. 엔비디아가 중국용으로 미 정부의 수출 허가를 받아 판매 중인 H20에는 삼성전자의 HBM3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만약 H20 수출까지 막는다면 삼성전자가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기술 규제 강화가 중국의 자립화를 부추겨 장기적으로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장비 국산화를 통해 반도체 자립을 꾀하고 있다. 앞서 2026년까지 2세대 HBM 제품인 HBM2의 자립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HBM2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16년 표준화를 주도하고 양산에 성공한 제품이다. 중국 D램 1위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 등은 중국 지방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화웨이와 협력,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中커넥티드카 규제 “준비 시간 주겠다”
‘준비 시간’ 발언은 한국 정부와 자동차업계의 의견에 대한 화답 성격이 크다. 지난 7월 말 미 국무부 주최 관련 회의에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이 참석해 “보안 목적으로 공급망 변경이 필요한 부품에 대해선 그 교체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의견을 냈었다. 앞서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미 상무부에 보낸 공문에서 “현재 한국 차량의 위성항법시스템엔 안보 위협 국가에서 개발한 부품이 사용되지 않는다”며 “부품의 공급망 변경에 따른 소비자 혼란을 수습하려면 최대 2년까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 시간을 줘야 한다”고 요청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커넥티드카의 기준이나 정의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는 ‘커넥티드카 부품’에 대한 분류를 스스로 한 뒤 훗날 각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할 수 있다. 이날 에스테비스 차관은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차량 동력 체계를 관리하는 중국·러시아산 부품을 사용한 차량의 미국 수입을 제한할 예정”이라고만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과거처럼 ‘어떤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중국을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협력 대상으로 한국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업계가 요구하는 추가 사항을 관철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커넥티드카 등 첨단 모빌리티 분야 경쟁력 지수는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중국은 86.3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84.2)이나 일본(85.8)보다 중국이 앞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