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 높이고 AI로 차별화...까다로운 유럽시장 공략나서는 한국 가전들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서 현지인들이노크를 하면 내부가 보이는 LG전자의 냉장고인 '인스타 뷰'를 체험하고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서 현지인들이노크를 하면 내부가 보이는 LG전자의 냉장고인 '인스타 뷰'를 체험하고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독일 사람들은 ‘에너지 자린고비’입니다. 매장에서, 이 제품 사면 한 달에 전기요금이 얼마나 더 나올지 직접 계산기 두드릴 정도로 꼼꼼하죠.”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 매장에서 만난 김현식 LG전자 독일법인 리빙PD 팀장은 “독일 소비자는 원래 에너지에 민감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런 경향성이 더욱 두드러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판 하이마트’ 격인 자툰 매장 내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한 한국 가전제품에는 고효율을 자랑하는 스티커와 홍보문구들이 눈에 띄게 장식돼 있었다.

국내 가전기업들이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인공지능(AI) 기능을 입혀 차별화하고 있다. 충성 단골 고객이 많은 밀레·보쉬·지멘스 등 독일 전통 브랜드와 저가로 공세하는 하이얼·하이센스 등 중국 브랜드 사이에서, 한국 기업은 에너지·AI의 투 트랙 전략을 펼쳐 고객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라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서 현지인들이 한국 가전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서 현지인들이 한국 가전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독일은 유렵연합(EU) 내에서도 전기요금이 비싸기로 악명 높다. 유럽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2030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리파워 EU’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율은 2019년 39.7%에서 지난해 52%까지 늘었다. 여기서 전쟁의 여파까지 더해지면서 전기료는 치솟고 있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가정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h)당 평균 41.6센트로 EU 27개국 가운데 최고다. EU 평균(28.5센트)보다 46% 높으며, 가장 저렴한 헝가리(11.1센트)의 4배에 달한다.

LG전자는 ‘전기료 폭탄’을 피하려는 독일 소비자 수요에 맞춰 유럽의 최고 에너지 효율 등급보다도 더 효율을 높인 제품들을 유럽 가전박람회 IFA2024에서 선보였다. 드럼 세탁기는 현존 최고 등급보다 55% 효율을 높였다. 냉장고는 25%, 건조기는 26%를 높여 각각 유럽 시장 출시 제품 중 최고효율을 자랑한다. 전기료를 아낄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간 제품도 인기다. 문을 열지 않고 노크만 해도 내부 확인이 가능한 ‘인스타 뷰’ 냉장고는 LG전자가 독일에서 판매한 전체 냉장고의 약 40%를 차지한다.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 고효율을 강조한 LG전자의 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 고효율을 강조한 LG전자의 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삼성전자도 컴프레서가 단일 동력원이던 기존 냉각 방식에서 반도체 소자인 펠티어를 결합해 두 가지 동력으로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비스포크 AI 하이브리드’ 냉장고를 유럽에 출시했다. 유럽 규격 기준 최고 등급보다 55% 추가 에너지 절감하는 ‘비스포크AI 세탁기’, 스마트싱스 에너지와 연계해 추가로 세탁기·건조기 등의 전기 사용을 줄여주는 ‘AI 절약모드’도 선보였다.

 

AI 기능으로 차별화

 
유럽은 전통 브랜드와 제품이 여전히 강세인 시장이다. 냉장고 시장에서는 상냉장 하냉동 형식의 투도어 제품이 50%를 점유하고 있으며, 청소기도 종이봉투를 갈아 끼우는 제품이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린다. 물이 묻는 세탁기의 경우 터치스크린식 보다는 다이얼을 직접 돌리는 기계식 조작을 선호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한국기업들은 AI로 기능과 성능을 차별화한 제품으로 새로운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 중국제품과 한국 가전 제품들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인 쿠담거리에 위치한 자툰매장에 중국제품과 한국 가전 제품들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베를린=박해리 기자

 
삼성전자는 자툰 매장 내 AI 홈 허브 ‘스마트싱스’와 주요 제품을 연결해 체험할 수 있게 꾸며 자사 AI기능을 홍보했다. 현지 소비자들은 TV로 스마트싱스의 맵뷰를 보며 주변 기기를 파악하고, 빅스비 음성 명령으로 로봇청소기를 켜는 등 시연을 살펴봤다. 전진규 삼성전자 DA사업부 상무는 “소비자들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AI 가전=삼성’이라는 공식을 유럽에서도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핵심부품에 AI 기술을 적용한 AI코어테크 등 차별화되는 자사의 기술력을 강조해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양사의 유럽 매출은 쑥쑥 성장 중이다.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은 올해 상반기 14조8000억원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약 30% 성장했다. 독일 프리스탠딩(빌트인 외) 냉장고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7.4%로 1위다. LG전자는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매출 6조770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10.9% 늘어나 액수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세탁기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약 4%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