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권오수 전 회장이 2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건희 여사처럼 ‘전주(錢主)’ 의혹을 받는 손모씨도 주가조작 방조 혐의가 인정돼 유죄를 받았다. 이에 따라 별도로 진행 중인 김 여사 검찰 수사도 변곡점을 맞게 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권순형)는 12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2월 1심의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보다 형량이 늘었다. 1심에서 무죄였던 손씨는 이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권 전 회장에 대해 “이 사건 범행으로 여러 유·무형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이고, 특히 시세조종 행위를 통해 도이치모터스 초기 안정적 성장 및 확장 과정에서 상당한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전반의 주모자, 의뢰자로서 큰 책임 있음에도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권 전 회장이 2009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주가조작 선수와 부티크 투자자문사,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 등과 짜고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동원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는 내용이다.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어 정치적 관심도가 컸다.
유죄로 바뀐 이유는 적용 혐의가 달라져서다. 당초 검찰은 손씨를 주가조작 공범으로 재판에 넘겼는데 1심 재판부는 “손씨가 큰손 투자자 혹은 전주에 해당할지언정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시세조종행위에 가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익을 노리고 시세조종에 편승한 의도는 짐작되지만, 공범으로 볼 순 없다는 취지다.
그러자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을 통해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추가했다. 형법상 방조 행위는 정범이 범행한다는 점을 알면서 그 실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간접 행위를 말한다. 즉, 직접 가담하진 않았더라도 시세조종행위를 알면서 계좌를 제공한 것 역시 처벌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힌 것이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손씨가 공범은 아니라면서도 방조 혐의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씨는 미필적으로나마 시세조종을 알면서도 대출받은 자금 등으로 인위적 매수세를 형성해 다른 피고인들의 시세조종을 용이하게 했다”며 “시세조종을 한다는 행위를 알면서도 이를 방조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손씨의 범행으로 주식 시세가 증권시장의 정상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선의의 일반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그럼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다른 피고인들은 대부분 원심과 비슷한 형량을 받았다. 이른바 주포로 지목된 이모씨는 원심과 같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씨는 주가조작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免訴)·무죄를 받았고 다른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또 다른 주포 김모씨도 원심처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투자자문사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이모씨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그대로 받았다.
이밖에 증권사 직원 김모씨와 한모씨가 각각 징역 1년의 집행유예 2년, 징역 8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중소기업 부사장 이모씨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증권사 영업부장 김모씨는 공범으로 인정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 중 8명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1명이 징역형을 받는 등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