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월병만 있는 게 아니다…중추절에 수박 먹는 까닭은?

옛날 중국에서는 중추절 수박에 다양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했다. 바이두바이커

옛날 중국에서는 중추절 수박에 다양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했다. 바이두바이커

중국의 중추절을 대표하는 명절 음식은 역시 월병이다. 이름부터 중추절 보름달을 상징해서인지 혹은 보름달처럼 둥근 모양이라 그런지 달 월(月), 떡 병(餠)자를 써서 달떡이다.

그러나 중국 중추절 음식으로 월병만 있는 게 아니다. 지역별로 다양한 중추절 음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추석이면 차례상에 사과, 배, 감과 대추, 밤 등의 햇과일을 올리는 것처럼 중국 중추절 식탁에도 과일이 빠지지 않는다.

역시 다양한 과일이 있는데 중국인들이 중추절에 먹는 과일에는 나름 원칙이 있으니 둥근 형태의 과일이어야 한다. 역사적 문화적 근거도 있다. 명나라 때 북경의 지리와 풍속 등을 적은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이라는 문헌에 중추절에 달에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과일과 떡은 반드시 둥근 모양이어야 한다(必圆)고 했다. 그래서인지 달에 제물로 바치는 떡을 달떡인 월병(月餠), 과일을 달 과일이라는 뜻의 월과(月果)라고 했는데 그중 대표적 과일로는 수박을 꼽았다.

그런데 중추절 차례 과일이 왜 하필 수박일까? 우리는 이제 막 수확을 시작한 햇과일, 이를테면 대추, 밤, 배, 감 그리고 사과 등을 추석 차례상에 제수로 쓰는데 중국은 제철을 지나 이제는 거의 끝물인 과일인 수박을 왜 중추절 차례상의 과일로 삼은 것일까?

우리와 중국은 지리와 풍속이 다르니 어느 한 가지 요인을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추석과 중국 중추절은 역사와 기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추석은 이름만 추석이 아닐 뿐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명절로 대동단합과 추수감사의 의식이 합쳐진 명절이다. 반면 중국 중추절은 송나라 때 명절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달 숭배신앙을 토대로 달맞이와 가족 화합 등의 의미가 짙다.


바꿔 말해 우리 추석에는 추수감사의 의미가 보다 강조되어 있기에 갓 수확한 햇과일을 제물로 올린 반면 중국 중추절은 달 숭배에 방점이 찍혀 있기에 보름달을 닮은 과일 수박과 이를 통해 가족 화합이라는 기원과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옛날 중국에서는 중추절 수박에 다양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했다. 이를테면 수박은 껍질이 황색이고 속껍질은 백색이며 속살은 붉은 색이어서 달을 상징하는 황색이 중국인이 좋아하는 홍색과 조화를 이루니 대길의 조짐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수박껍질이 녹색이 아니고 황색이라는 것도 그렇고 억지로 갖다 붙이는 의미 부여가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일부 문헌에서는 그렇게 풀이했다

황색 수박. 바이두바이커

황색 수박. 바이두바이커

또 수박은 겉은 둥글고 맛은 달콤하니 단원첨밀(团圆甜蜜), 즉 원만함과 화목함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중추절에 이렇게 달을 보며 보름달을 닮아 둥근 수박을 먹는 까닭은 가족과 친척간 둥글게 원만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옛 문헌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 때 지방 기록인 『건창부지(建昌府志)』에는 중추절에는 사람들이 높은 누각에 올라 달을 감상하며 수박과 월병을 먹는데 이는 달의 둥글고 원만함을 취하기 위함이다(取月圓之義 )라고 풀이했다. 건창부는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남성현(南城縣)에 위치했던 관청이니 명나라 때 이미 북경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남쪽의 강서성까지 달을 보고 수박을 먹으며 일가친척간 화목과 화합을 기원하는 풍습이 퍼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뿐만이 아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중추절 수박에 온갖 염원과 상징을 담았다. 청나라 후반 북경의 세시풍속을 적은 『연경세시기』 에는 중추절 차례를 지낼 때 놓는 수박은 반드시 수박을 깎을 때 연꽃 꽃받침(莲花瓣) 모양으로 조각해 잘라 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불교에서 연꽃은 극락에서 피는 꽃이고 청정을 상징하는 등 더없이 좋은 의미가 담겨 있으니 역시 중추절 연꽃 꽃받침 모양으로 조각한 수박을 먹으며 복을 빌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추절 명절 음식으로 월병만 알고 있었는데 명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중추절 과일로 수박을 먹는다는 사실이 뜻밖인 데다 그 속에 담긴 여러 의미 또한 대단히 중국적이어서 흥미롭다. 역시 우리 추석과 중국 중추절은 과일 하나만 놓고 봐도 달라도 한참 다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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