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투기자본 방어"vs"적대적 M&A 어불성설"

영풍 장형진 고문(왼쪽)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사진 각사

영풍 장형진 고문(왼쪽)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사진 각사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추석 연휴 내내 이어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영풍과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기업사냥꾼의 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은 “1대 주주의 정당한 경영권 강화”라는 논리로 맞섰다.

고려아연은 18일 대표이사 성명을 통해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의 공개매수에 대해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한다”고 밝혔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는 “이번 공개매수 시도는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약탈적 M&A라고 판단된다”며 “경쟁력 있는 회사들을 인수한 다음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과도한 배당금 수령을 통해 투자금 회수에만 몰두하는 등 약탈적 경영을 일삼아왔다. 당사의 경영권을 해외 자본에 재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대주주인 영풍에 대해서 박 대표는 “석포제련소를 운영해 오면서 환경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 왔으며 대규모 적자를 내며 경영능력이 없음을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개매수는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당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와 지역사회에서도 고려아연에 힘을 보태는 목소리가 나왔다. 소액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운영진은 지난 15일 “고려아연은 주주환원율 최고의 회사”라며 “‘동학개미’가 회사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의 상반기 주주환원율은 71%(개별 기준 61%)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영풍이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은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단순한 기업 간 갈등이 아니라 대한민국 기간산업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며 울산시민 120만명과 함께 주식 1주 갖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박희승 민주당 의원과 울산시의회도 이번 공개매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33.1% 최대주주의 공개매수, 왜 의심하나?”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이 같은 주장에 적극 반박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이날 “공개매수는 명백한 최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차원”이라며 “장씨(영풍측)와 최씨(고려아연측) 일가의 지분 격차만을 보더라도 적대적 M&A는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풍과 장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3.1%로 최씨 일가(15.6%)보다 2배 이상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로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각각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고려아연은 공정거래법상 장형진 영풍 고문을 총수로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 영풍그룹의 계열사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주장하는 계열 분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이 중국계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MBK파트너스 측은 “전혀 그럴일 없다”며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 수도 없고, 팔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주주환원율이 높다는 목소리를 의식, 새로운 주주환원정책 계획도 밝혔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5월 이후 현재까지 매입한 2588억원(지분율 2.4%) 자사주에 대해 ‘전량 소각’하겠다. 4차 자사주 매입 취득 금액 중 잔여금액(약2900억원)으로 향후 취득하게 될 자기주식도 전량 소각하는 것이 주주가치 제고에 맞다”며 “과거 3개년 평균 주당 배당액 1만8333원도 2만5000원대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향후 향방은?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결국 승패는 지분확보에서 갈릴 예정이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했지만, 한국앤컴퍼니가 높은 지분율과 자금력을 동원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며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시가총액 규모(13조원)가 한국앤컴퍼니(5조원)보다 더 크고, 최 회장 측이 지분을 직접 매입해야 하는 점 등을 볼 때 지난해와 상황이 다를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실패를 겪은 MBK파트너스가 실적이 탄탄하고 배당이 높은 고려아연에 대해 추석을 앞두고 기습 공개매수에 나선 것에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고려아연 지분 중 유통물량은 22.92% 정도로 비교적 많지 않은 가운데, 소액 주주 등의 지지를 받는 상황은 고려아연 측에 유리한 지점이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MBK파트너스와 장씨 일가 지분율은 기존 33.13%에서 최소 40.13%, 최대 47.73%까지 늘어나게 된다. 최소 기준으로만 잡더라도 현재 고려아연 측 지분율인 33.99%보다 6.14%포인트 이상 높아진다. 자금력이 부족한 고려아연 측은 우호세력 확보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이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고려아연 측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선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영풍정밀 및 영풍의 주주들과 함께 MBK파트너스와 장 고문을 포함한 영풍 경영진에 대해 배임 혐의 고발 등 민형사상 법적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이날 추가로 밝혔다. 고려아연 주식은 사실상 영풍이 보유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인데, 이를 MBK파트너스에 넘겨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최씨 일가 역시 영풍의 주주로 지분율 17.84%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