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영·중·일 금리 동결…고민 깊어진 한은

미국 금리 인하 파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8일(현지시간)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했지만, 곧이어 열린 중국과 일본은 ‘금리 동결’을 택했다. 일본은행(BOJ)은 19~20일 열린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정책위원 9명 만장일치로 단기 정책금리(당좌예금 정책 잔고 금리)를 유지키로 했다.

중국 역시 이날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시장의 예상을 깨고 동결을 결정했다. 앞서 영국의 영란은행은 연준의 빅컷 직후 연 금융정책위원회(MPC)에서 금리를 동결했다. 8월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내렸던 영국은 현 시점에서는 추가 인하가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 같다. 나라마다 물가나 경제 사정이 제각각인 만큼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택한 것이다.

금리 인하를 두고 우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전환)과 빅컷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본이동 자유화로 미 금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신흥국은 독립적인 통화정책 사용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미국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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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하 폭이다. 연준 위원들의 점도표에 의하면 올해 추가로 0.25%포인트씩 2번 인하하고, 내년에는 0.25% 포인트씩 4번 인하를 예상한다. 빅컷으로 상단기준 5%가 된 금리가 올해 말에는 4.5%, 내년 말에는 3.5%까지 내려간다는 것이다. 다만, 각종 경제 지표를 고려하면 연속적인 빅컷은 없을 것 같다. 파월 의장도 미국의 중립금리가 높아졌다며 월가가 기대하는 저금리를 경계한다.

이렇게 보면 연준은 인플레이션 재발을 우려해 앞으로 저금리보다는 3%대의 ‘중금리’로 금리를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금리를 유지할 경우 한국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선 한국보다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선 만큼 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 고비용사회 대응을

김정식

김정식

연쇄적으로 자본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통상 미국의 금리 인하는 글로벌 투자위험을 낮춰 한국과 같은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자본을 분산시킨다.

한국 증시엔 반가운 일인데 다만, 이번에는 변수가 있다. 미·일 간 금리 차 축소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 자금 유출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에 대한 투자 증가다. 이로 인해 과거와 같은 자본 유입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코스피 등 국내 증시가 기대만큼 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 중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책당국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미국 금리와 저성장에 빠진 국내 상황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과도한 금리 인하는 경계해야 한다. 금리 인하는 이자 부담을 줄이고 소비 여력을 높여 내수경기를 부양할 수 있고, 고금리로 인한 금융 부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재발을 비롯해 집값을 밀어 올리고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부작용도 초래한다. 지금도 이미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가 한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은은 금리 인하 폭을 줄이고 속도를 늦춰서 내수 침체를 막으면서 동시에 집값에 거품이 끼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원화 가치 변동성을 줄이고 적정환율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나친 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은 수출 감소로 이어져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인플레이션 재발과 고비용사회에도 대응해야 한다. 금리 인하로 수요가 늘면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고비용사회는 지출이 소득보다 커 가계부채가 구조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소비 여력이 감소하면서 내수 침체가 가속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은 주거비와 농산물가격 그리고 공공요금과 임금이 많이 오르면서 이미 고비용사회에 진입해 있다. 진입 속도를 둔화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수입을 확대해 가격을 안정화하고, 공공요금과 임금 인상을 억제해 저금리로 인한 고비용사회에 대응해야 한다. 글로벌 금리 인하 충격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인플레이션 재발을 막고 침체한 내수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당국의 적극적이고 현명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