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8년까지 400억원이 들어가는 입문훈련기-Ⅱ의 사업 형태를 보면 ‘국외 구매’라고 돼 있다. 국산 훈련기를 쓰던 공군이 갑자기 외국서 사오겠다고 할까.
대한민국 공군만 산 입문훈련기 KT-100
공군의 입장은 이렇다.
공군은 KT-100 훈련기 엔진 단종 및 후속군수지원의 어려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신규 훈련기 도입이 비용효과 측면에서 타당한 것으로 판단하였음. 공군과 방사청은 KT-100 창정비 도래 시기를 고려해, ’27년부터 신규 훈련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해외 구매 방식으로 사업 추진 중임.
입문훈련기는 미래의 파일럿을 창공으로 이끄는 비행기다. 조종이 쉬우면서도, 튼튼하고, 운용비가 적게 들면 최고의 입문훈련기다. 그런데 KT-100이 이 같은 입문훈련기의 ‘미덕’ 중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게 문제였다.
입문훈련기 KT-100은 4인승 민수용 항공기 KC-100 나라온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나라온’은 ‘날아’를 소리가 나는 대로 읽은 ‘나라’와 100을 뜻하는 순우리말 ‘온’을 엮은 말이다. 말 그대로 ‘100% 완벽하게 날아오른다’는 의미다. 2011년 7월 15일 첫 비행에 성공한 KC-100은 2013년 개발을 끝냈다.
KC-100는 동체를 탄소섬유로 만들었고, 전자식 엔진제어장치(FADEC)ㆍ단일출력조절장치(SLPC)ㆍ자동조종시스템ㆍ12인치 항전 디스플레이 등 첨단장비를 갖췄다. 그리고 KC-100에 영상ㆍ음성기록장비와 피아식별장비 등을 더해 KC-100이 나왔다. 2015년 10월 5일 처음으로 난 KT-100은 2016년부터 모두 24대가 240억원에 공군으로 납품됐다.
KAI는 KC-100을 기반으로 2인승 항공레저용 KLA-100이란 파생형도 개발했는데, 단 1대도 못 팔았다. 'KC-100 패밀리'의 유일한 구매자는 공군이란 얘기다.
항공 부품의 미국 수출길 뚫으려 개발
KC-100은 처음부터 시장에 내놓으려고 설계한 항공기가 아니었다. 발단은 국토교통부가 2008년 2월 19일 미국 연방항공청(FAA)와 상호 항공안전협정(BASA)을 맺으면서다. BASA는 두 나라가 서로 항공기 관련 제품의 인증 등 신청을 간소화한 절차로 처리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제도다.
KC-100은 국내 최초로 표준감항인증을 받았다. 감항(堪航)은 ‘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을 견딘다’는 의미로, 감항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ion)은 항공기가 설계부터 도태까지의 전 수명주기 동안 비행 안전성이 있다는 걸 정부가 인증하는 제도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상호인증체계가 만들어졌고, 국산 항공 부품의 미국 수출이 가능해졌다.
간단히 줄이자면, 하늘을 날아다니기보다는 제도ㆍ절차에 필요해서 나온 항공기가 KC-100이다. 경비행기 시장을 노리고 만든 항공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어떤 과정에서 공군 입문훈련기로 바뀌었을까.
시장 전망이 높지 않아 눈 돌린 공군 납품
정부 소식통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부(국토교통부)가 주도해 KC-100을 내놨는데…. 갑자기 정부가 욕심이 생겼다. 개발비 774억원을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한 것이다. 제원도 괜찮고, 생김새도 잘 나왔으니 팔릴 수 있을 것이란 나름의 계산도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KC-100이 ‘제도용’에서 ‘민수용’으로 탈바꿈했다.
정부의 셈법은 오산이었다. 이미 경비행기 시장은 세스나·시러스·파이퍼(이상 미국), 다이아몬드(오스트리아)와 같은 미국·유럽 업체가 꽉 잡고 있다. 이들 업체의 경비행기는 시장에 많이 풀려 있기 때문에 단가도 싸고 운용비도 적게 든다. KC-100이 비비고 들어갈 틈이 좁다.
막상 해외 수요가 적을 가능성이 크니 KC-100은 ‘군납용’ KT-100으로 다시 변신한다. 마치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돌면 갑자기 군 급식에 닭 요리가 자주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KT-100을 공군에 팔아 생산 라인을 유지하고 시간을 버는 동안,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올 것이라 정부가 예상한 모양이다.
KT-100의 개발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고 한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방산업계 관계자는 “과도하게 고성능ㆍ고사양으로 기체를 설계했다”며 “경비행기는 간단하고 단순하게 설계해야 가격도 싸고 운용비가 적게 든다”고 말했다.
값은 비싸고, 곳곳에 결함 발견돼
어찌어찌 KT-100이 공군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격부터 말썽이었다.
KC-100 1대의 가격은 2015년 기준 57만 5000달러(약 7억 6000만원)다. KT-100은 10억원 남짓이라고 한다. 경비행기 시장의 베스트셀러인 세스나 172(군용 입문훈련기 T-41의 원형)는 40만 달러다. 괜찮은 상태의 중고는 30만 달러 수준이다. 시러스의 SR20은 최신형이 69만 4000달러(약 9억 2000만원)이며, 중고 시세는 30만 달러다.
감사원은 2017년 7월 KT-100의 고양력장치(Flap)가 이륙 위치에 고정되지 않는 현상이 29차례나 발생하고, 브레이크 과열 현상도 9차례 발생하는 등 비행 안전에 중요한 다수 결함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신속한 보완이 이뤄지지 않아 최초 납품된 2016년 4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평균 가동률이 26%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방위사업청장과 공군참모총장에게 대책을 빨리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6년부터 2020년 6월까지 KT-100에서 모두 100건의 결함이 나타났다. 2018년에만 36건이었다. 주로 전기(29건)였고, 계기(27건), 엔진(22건) 등 결함이었다. 익명의 군 관계자는 “KT-100 브레이크 제동이 잘 안 걸려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6월 8일 공사 KT-100 1대가 엔진이 꺼져 활주로 근처 논에 불시착했다. 학생과 교관 2명은 모두 무사했다. 공군 조사 결과 엔진 결함이 원인이었다. 엔진을 분해했더니, 프로펠러를 돌리는 축이 마모돼 절단돼 있었다.
KT-100의 조종 방식이 독특한 데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대부분 항공기는 요크로 조종하는데, KT-100은 조종석 오른쪽과 왼쪽의 사이드 스틱으로 움직인다. 사이드 스틱으로 조종하는 항공기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다.
필리핀에 넘겨준 T-41B는 40년 넘게 비행
KT-100의 부품 수급도 어렵다. 많이 팔리지도 않았고, 감항인증 목적으로 생산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KT-100의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다. 엔진을 비롯 단종한 부품이 점점 더 많아졌다.
군 당국이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새로운 부품으로 대체하는 비용보다 아예 입문훈련기를 다시 사는 게 더 경제적이란 결과가 나올 정도다. KT-100 도입 8년 만의 일이다.
사실 입문훈련기의 ‘수난’은 KT-100이 처음이 아니다. KT-100의 ‘전임자’였던 T-103도 2004년부터 2018년까지 14년만 날았다.
T-103은 ‘불곰사업’을 통해 들여 온 러시아의 Il-103 Mk 10B다. 불곰사업은 1990년 수교 때 소련에 제공했던 경제협력 차관 14억 7000만 달러를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가 경제난으로 갚지 못하자, 현금 대신 무기나 방산기술로 한국에 갚은 사업이었다.
공군은 2004년부터 1대당 약 2억원에 총 23대의 T-103을 도입했다. 그런데 T-103 역시 기체 결함이 잦고, 부품 조달이 어렵고, 정비 보수가 힘들었다. 정시 운용률이 26%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퇴역할 때까지 T-103 1대당 평균 운용 시간이 2500시간이 조금 넘을 정도였다.
T-103이나 KT-100의 경우에서 보듯, 공군은 입문훈련기를 떠넘겨 받은 셈이다. 그렇다고 공군이 ‘선량한 피해자’는 아니다. 입문훈련기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도입 사업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반면 공군이 T-103 이전에 썼던 T-41B는 1972년부터 2006년까지 34년간 날아다녔다. 총 비행 30만 시간동안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도 없었고, 16만 시간 동안 무사고로 비행했다. 그리고 퇴역 T-41B 27대 중 중 15대는 2008년 12월 필리핀 공군에 무상양도됐다. 그리고 현재 필리핀 영공에서 여전히 비행훈련 임무를 수행 중이다.
T-41은 1964~1996년 동안 제조됐다. T-41은 아날로그 계기판이고 냉난방 기능도 없지만, 조종이 편리하고 엔진이 멈춰도 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성이 높다. T-41의 원형인 세스나 172의 첫 비행은 1956년에 있었고, 아직도 생산 중이다.
진정한 입문훈련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T-41B가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고려가 부른 입문훈련기 ‘수난시대’
국토교통부는 2014년 5월 9일 국방부ㆍ방위사업청ㆍKAI와 함께 KT-100 협정서(MOU)를 맺으면서 이렇게 밝혔다.
국토부는 KC-100을 공군 비행실습용 훈련기로 대체하면서 약 150억원의 수입대체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국산 경항공기, 민간 무인항공기 실용화 개발에도 성공할 경우 2022년까지 약 1만명의 고용창출이 예상된다.
그러나 국토부의 장밋빛 전망이 얼마나 이뤄졌을까. 0%에 가깝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물론 KC-100과 KT-100을 통해 얻은 게 전혀 없지는 않다. 경험과 노하우, 감항인증 제도 등은 KC-100 사업의 성과다.
그리고 정치적 고려 때문에 무기를 선택하면 결국 탈이 나고, 피해는 군이 떠 안아야 하며, 아까운 세금이 낭비된다는 교훈도 KT-100이 알려줬다.
그리고 군은 필요할 때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공군은 2013년 차기 전투기로 F-15SE가 선정되자, 이에 강하게 반대해 F-35A로 변경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