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팡의 자유' 침해?…공정위 멤버십 해지 규제에 당혹스런 구독업계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네이버·마켓컬리가 소비자의 계약 해지를 방해했다며 제재에 착수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오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 등 구독 서비스 업계는 서비스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며 반발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전경. 중앙포토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네이버·마켓컬리가 소비자의 계약 해지를 방해했다며 제재에 착수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오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 등 구독 서비스 업계는 서비스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며 반발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전경. 중앙포토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의 멤버십 해지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해지 신청 이후 남은 기간 요금을 즉시 돌려주지 않아 소비자의 계약 해지를 방해했단 게 이유다. 앞서 같은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오른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등 구독 서비스 업계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2일 이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쿠팡·네이버·마켓컬리에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유료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기만적인 방법으로 소비자의 계약 해지를 방해했다고 봤다. 소비자가 구독 해지를 신청하면 즉각 서비스를 중단하고 남은 기간 이용료를 돌려주는 게 아니라, 환불 없이 서비스를 유지하다 구독 만료일에 서비스를 종료하는 방식이 구독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각 업체는 ‘와우 멤버십’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컬리멤버스’ 등 유료 구독 서비스를 통해 빠른 배송, 추가 적립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커머스 업계의 구독 해지 방식이 소비자의 계약 해지를 방해한다고 봤다. 쿠팡의 심사보고서엔 유료 멤버십인 '와우 멤버십' 가격 인상 과정에서 나타난 '다크 패턴(소비 유도 상술)' 혐의도 포함됐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공정위는 이커머스 업계의 구독 해지 방식이 소비자의 계약 해지를 방해한다고 봤다. 쿠팡의 심사보고서엔 유료 멤버십인 '와우 멤버십' 가격 인상 과정에서 나타난 '다크 패턴(소비 유도 상술)' 혐의도 포함됐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쿠팡에 대한 심사보고서엔 와우 멤버십 요금 인상 과정에서 벌어진 소비자 기만 혐의도 포함됐다. 쿠팡은 지난 4월 멤버십 요금을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리면서 상품 결제창에 요금 변경 동의 문구를 포함했다. 이때 물품 결제 버튼을 누르면 가격 인상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공정위는 소비자를 속이는 ‘다크 패턴(소비 유도 상술)’에 해당한다고 보고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당시 쿠팡은 다크 패턴 논란이 일자 지난 7월 앱 안에 요금 변경 동의 여부를 재확인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쿠팡 와우 멤버십의 요금 인상 이후 동의 절차를 두고 다크 패턴 논란이 일자 지난 7월 쿠팡은 앱 안에 요금 변경 동의 여부를 재확인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사진 쿠팡

쿠팡 와우 멤버십의 요금 인상 이후 동의 절차를 두고 다크 패턴 논란이 일자 지난 7월 쿠팡은 앱 안에 요금 변경 동의 여부를 재확인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사진 쿠팡

“계약 해지 방해” vs “구독경제 특성 고려해야”   

구독 해지 방해 논란은 OTT와 음원 업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공정위는 지난 3월 OTT 업체 3곳(넷플릭스·웨이브·왓챠)과 음원 서비스 업체 2곳(스포티파이·벅스)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 업체가 소비자들에게 중도 해지 기능을 제공하지 않거나 해지 방법을 명확하게 알리지 않아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보고 지난 8월 업체 5곳에 심사보고서를 보내고 제재에 착수했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구독 서비스 업계는 온라인 구독 경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단기간에 핵심 서비스만 누리고 구독을 해지하는 ‘체리 피커’를 막기 위해선 환불 제한이 필요하단 것이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하루만 운동하고 해지할 생각으로 헬스장 회원권을 사는 사람은 없지만, 동영상 시청이나 물품 배송 등 온라인 구독 서비스는 원하는 혜택을 단기간에 빠르게 누리고 나서 바로 구독을 취소하는 고객이 있다”라며 “누린 혜택이 아니라 구독 기간을 기준으로 무조건 환불해줘야 한다는 건 구독 서비스에 대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구독 서비스 해지 방식에 대한 공정위 제재가 시작되자 OTT 등 구독 서비스 업계는 '체리피커(실속만 챙기려는 고객)'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식이라며 반발했다. 연합뉴스

구독 서비스 해지 방식에 대한 공정위 제재가 시작되자 OTT 등 구독 서비스 업계는 '체리피커(실속만 챙기려는 고객)'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식이라며 반발했다. 연합뉴스

환불 규제가 되려 소비자의 이익을 제한할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구독 서비스 자체가 일정 기간 제한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약 없이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며 “월 단위로 설계한 서비스를 사실상 하루 단위로 판매하게 되면 가격 인상이나 품질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TV(IPTV)에서 개별적으로 콘텐트를 사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OTT 서비스가 등장한 것인데, 이런 식의 규제가 이뤄진다면 결국 콘텐트를 쪼개 팔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소비자 이익과 업계 특성 모두 따져봐야”

전문가들은 신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소비자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따진 이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개별적인 과금 방식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규제한다면 구독경제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약화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플랫폼 산업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인 만큼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과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라며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땐 제한하는 기업의 이익과 보호하는 소비자 이익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 기만 행위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필요하다고 봤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크 패턴 규제는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소비자가 착오로 원치 않는 결제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