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죽의 나라 중국, 중국인의 죽 사랑

중국은 죽의 나라다. 죽 종류도 많을뿐더러 죽의 형태도 세분화되어 있다. 바이두(百度)

중국은 죽의 나라다. 죽 종류도 많을뿐더러 죽의 형태도 세분화되어 있다. 바이두(百度)

중국 내지 중화권 나라의 아침 출근길 풍경을 지켜보면 나름 재미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는데 중국 꽈배기 유탸오(油條)를 비롯해 만두 등 아침 먹거리가 다양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죽을 먹는다. 하기야 유탸오와 함께 먹는 콩국물인 두장(豆漿)도 따지고 보면 미음 장(漿)자를 쓰니 일종의 죽이다. 이 밖에도 하얀 쌀죽을 비롯해 깨죽 채소죽 등등 여러 종류의 죽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다. 죽이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기 때문인지 혹은 그 이상의 문화적 함의가 있기 때문인지 어쨌든 중국 속담에 아침 공복에 먹는 죽은 보양식이라고 했으니 중국에서 죽 많이 먹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중국은 죽의 나라다. 하지만 우리와는 죽 문화가 상당히 다르다. 우리는 주로 아플 때 환자식으로 먹지만 중국은 그 이상이다. 아플 때는 물론 보양식으로, 해장음식으로 또 식사 대용으로 내지는 식사 그 자체로도 먹는다.

그런 만큼 죽 종류도 많다. 단순히 가짓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죽의 형태도 세분화되어 있다. 우리는 크게 죽과 미음 정도로만 구분하는 반면 중국은 또 다르다. 죽(粥)이 있고 미음(糜)이 있으며 물에 끓인 밥 같은 희반(稀饭)도 있다. 같은 죽이라도 된 죽은 전(饘), 묽은 죽은 이(酏)라고 했고 미음도 보통 미음과 콩국물인 두장처럼 묽은 미음(漿)을 구분했다. 물론 옛날 구분법이지만 그토록 세분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죽에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청나라 때 미식가 원매는 요리 품평서인 『수원식단』에서 밥물만 보이고 쌀이 보이지 않으면 죽이 아니고, 쌀알은 보이는데 밥물이 보이지 않으면 또한 죽이 아니니 밥물과 쌀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밥의 기름진 맛과 밥물의 부드러움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죽이라고 할 수 있다고 품평했을 정도다.


이토록 죽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기 때문인지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모든 재료를 활용해 죽을 끓였다.
고대로부터 중국인이 주요 곡식으로 삼았던 쌀(粳) 조(粟) 기장(粱) 수수(黍) 밀(麥) 등으로 죽을 끓일 수 있다고 했으니 옛날부터 죽을 보편적으로 먹어왔음을 알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청나라 때 죽과 관련된 정보를 집대성한 죽 백과사전인 『광죽보(廣粥譜)』에서는 곡식은 물론 채소와 고기, 생선, 과일 등으로도 죽을 끓일 수 있다면서 죽의 종류가 무려 247가지나 된다고 했다.

심지어 찻잎으로 차만 우려낸 것이 아니라 죽까지 끓였으니 명죽(茗粥)이 그것이다. 명(茗)은 새싹과 반대로 늦게 난 찻잎이다. 명죽은 소화를 돕고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당나라 때 차의 유행과 함께 퍼진 죽이라니까 나름 역사가 깊다.

죽을 특별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죽을 먹었을까? 전설의 시대인 황제(黃帝)때부터로 『주서(周書)』에는 황제가 곡식 끓이는 법을 가르치고 이를 죽(粥)이라고 했다고 나온다. 그럴듯하게 전설을 만들었지만 먼 옛날 토기에 처음 익힌 음식은 밥이 아니라 죽이었으니 그냥 먼 옛날부터 죽을 먹었다는 소리다.

실제 고대 로마인들도 빵을 먹기 전에는 "죽(porridge) 먹는 것들"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으니 동서양 모두 최초의 음식은 밥이나 빵이 아닌 죽이었다.

다만 밥과 빵이 발달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죽이 쇠퇴했지만 중국에서는 죽이 밥과 만두 국수 못지않게 발달했으니 이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실제 명나라 말의 『본초강목』에는 모두 50종의 죽이 보이는데 청나라 문헌 『죽보(粥譜)』에는 100종, 『광죽보』에는 247종이 보인다니 근대로 갈수록 더욱 진화한 셈이다.

중국에서 이토록 죽이 발달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죽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건강에 좋고 양생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아예 죽에 대해 환상까지 품었다.

10세기 송나라 때의 재상 범중엄은 죽을 먹으면 마음이 안정된다(食粥心安)고 했고 12세기 송나라 시인 육유는 『죽을 먹다(食粥)』라는 시에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수를 바라지만 그 비법이 바로 눈앞에 있는 줄 모른다며, 그저 죽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읊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죽 예찬이 끊이지 않았으니 중국이 죽의 나라가 된 데는 다 나름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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