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여야가 예산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건 너무 한가한 얘기”라며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안부터 처리한 뒤에야 예산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입장차엔 여전히 변화가 없다. “(감액 예산안에 대한) 야당의 사과와 감액안 철회 없이는 협상에 임하지 않겠다”는 여당과 “예산안 협상 파행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야당 입장이 맞부딪친다. 예산안에 가렸지만, 세법 개정안도 의견 차이가 크다. 야당이 협상 막판에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상속·증여세법 개정안)와 배당소득 분리 과세(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를 수용하지 않기로 방향을 틀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탄핵안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예산안 처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7일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물리적으로 예산안을 협의할 시간도 부족하다. 여당은 대통령실, 야당은 이재명 대표만 바라보는 상황이었는데 탄핵 사태로 당·정에서 예산 담판에 나설 ‘메신저’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10일까지 예산안 합의가 불발될 경우 문제가 커진다. 야당이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예비비(2조4000억원 감액)다. 예비비는 재난뿐 아니라 비상시에 쓰도록 편성한 예산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긴급한 산업·통상 분야 대응에도 쓸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감액 예산안에 국가전략기술 세제 지원 확대, 소상공인 부담 경감, 내수 활성화 방안이 빠진 데다 청년·아이돌봄·의료개혁과 마약 등 범죄 대응 예산이 줄어든 점도 우려하고 있다.
예산안이 12월 31일까지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임시로 준(準)예산을 편성할 가능성도 있다. 헌법 54조 3항은 예산을 전년에 준(準)해 편성하는 준예산 집행 대상을 ▶국가 기관의 유지 및 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한 사업의 계속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 운영을 위해 최소한 지출만 허용하고, 재량 지출을 통제한다는 원칙만 있다.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피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세제는 정부를 굴러가게 하는 2개 핵심 수단”이라며 “탄핵 정국으로 예산안 처리가 뒤로 밀린다면, 1%대까지 쪼그라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