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세일즈’ ‘대왕고래’ 어디로…윤석열표 산업정책 동력 잃나

지난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해제 사태에 이어 대통령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현 정부의 주요 산업 정책들이 동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대표적인 윤석열표 산업 정책은 원전업 부흥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펴면서 업계가 위축됐는데, 윤 대통령은 이를 폐기하고, 원전 일감을 발주하는 해외 국가를 대상으로 직접 원전 ‘세일즈’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탄핵 가능성에 원전업계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확대에 따라 앞으로 원전 일감 발주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주 활동의 구심점을 잃을까 걱정된다는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하는 업계 관계자는 “원전 일감은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 정상이 직접 뛰어야 한다. 앞으로 윤 대통령이 그럴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장 내년 3월 수주 계약을 체결할 예정인 체코 원전 사업(지난 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체코 측이 입찰 과정에서 한국 사업자 대표인 한국수력원자력에 “다시 문 정부처럼 탈원전 정책으로 돌아가 한국 원전업이 위축되고 사업 수행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없나”라며 우려한 적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탄핵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 소통지원센터장은 “이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에 이제 와서 수주가 무산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악재가 벌어진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유전 개발)도 표류 위기에 빠진 윤석열표 산업 정책이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통해 알려진 직후부터 줄곧 민주당 등의 공세를 받아왔다. 지난달 29일엔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단독으로 내년도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예산 497억원 전액을 삭감하기도 했다. 사업을 수행하는 한국석유공사 내부에선 “이번 사태로 사업이 윤 대통령을 따라 순장(殉葬)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가 안보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와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육성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부동산 정책도 ‘시계 제로’에 놓였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가 탄핵 정국에 휘말리면서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를 지연할 수밖에 없어서다. 대표적인 정책이 서울 중심의 고질적인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8·8대책(정비사업 활성화, 그린벨트 해제 등)이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비사업은 지금도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잘 안 되는데, 새로운 불확실성이 추가됐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추진 동력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내년 1월20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주요 무역 상대국들에 ‘관세 폭탄’을 예고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통상 정책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 실각 가능성과 더불어 산업통상자원부를 이끄는 안덕근 장관 등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상태여서다. 연금개혁 등 여·야의 협치가 필수적인 정책들도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취임 전후 100일(취임 전 50일, 취임 후 50일)이 차기 트럼프 미 정부에 대한 통상 정책을 집중할 골든타임인데, 골든타임에 접어든 직후에 이번 사태가 벌어져 안타깝다”며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리 정부가 손을 쓸 여지가 좁아진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통상정책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협력하는 한편 최대한 빨리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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