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사실상 직무배제? "현행법상 가능" vs "헌법 파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이튿날인 8일 여야가 ‘사실상 대통령 직무배제’가 가능한지를 두고 충돌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일 탄핵안 폐기 직후 “대통령은 퇴진 시까지 사실상 직무 배제될 것”이라고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이 “헌법 무시”라며 반발하면서다. 법조계 역시 대통령직을 유지한 가운데 ‘사실상 직무 배제’가 가능한지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표는 탄핵안 부결 이튿날 8일 오전에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동 후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윤 대통령이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덕수 총리 역시 “저를 포함한 모든 국무위원은 여당과 함께 국가 기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여당의 발표에 국회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8일 “국민주권과 헌법을 무시하는 매우 오만한 일”이라며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12·3 내란 범죄의 연장이자, 또 하나의 내란”(조승래 수석대변인), “어떠한 법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국정장악 시도”(한민수 대변인)라고 반발했다.

 

대통령-책임총리 병립…“헌법상 ‘궐위 또는 사고’ 조건 불성립”

한 총리와 한 대표의 주장은 대통령을 그대로 두되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한 대표) 퇴진 때까지 그 권한을 정지시키고 타인에게 위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77조)고 규정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헌법상 권한대행 조건인 ‘대통령 궐위’ 또는 ‘사고’가 현시점에선 적용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 궐위란 사망·사임(하야)·파면(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 등 직위가 공석이 된 경우를 뜻하기 때문에 지금은 명백히 아니다. 관습법적 개념인 ‘사고’에는 통상 질병·실종·구속 등이 포함되는데, 대통령은 실종되지도 체포되지도 않았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경우엔 ‘탄핵소추가 의결되었을 때에는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헌법 65조 2항)는 별도 규정이 있다.

이에 헌법 77조와 별개로 책임총리제 운용이 거론되지만 이 역시 찬반 논란이 큰 사안이다. 책임총리제는 국무총리에게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총리나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 등 일부 선례도 있지만, 대통령 직무가 배제되는 책임총리제가 실현된 적은 없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종호 기자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법조계 일각에선 “현행 헌법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86조 2항) 등 헌법 조항을 근거로 “총리가 일정한 사안에 책임지고 결정하도록 하고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식으로 운용하면 제도 실행이 가능하다”며 “이를 주장한 헌법학 연구와 논문이 많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 역시 조건부로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장 교수는 “한 대표와 한 총리가 대통령을 2선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대통령 본인이 ‘당에 일임한다’(7일 대국민 담화)고 한만큼 총리에게 권한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반면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헌법은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며 “그러한 권력을 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행사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자 국정농단”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와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 위임을 주도하는 데 대해서도 “또 다른 헌법 파괴적 모의”라며 “어디에서도 대통령에게 월급 주면서 자리를 보전하게 하고 아무 권한이 없는 사람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역시 “대통령이 법적 근거나 공식적인 절차도 없이 권한을 주면 향후 국가적 사고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문제가 된다”며 “미국 입장에서도 협상의 대상자가 대통령인지 총리인지 알 수 없는 상당한 불안한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총리에게 권한을 넘길 것이면 유고 선언을 먼저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내란죄 구속은 ‘사고’, 총리 권한대행…자격상실 땐 60일 내 대선

만약 윤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체포·구속될 경우엔 “헌법 71조상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로 보고 권한대행 체제로 넘어가는 것이 헌법 시스템”(노희범 변호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체포·구속되더라도 바로 직무정지라고 해석할 명확한 규정이 없다. 구치소에서 직무를 수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주장도 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8일 언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절차상 (피의자로 입건된 것이) 맞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추후 내란죄로 구속기소된 뒤 법원에서 자격상실형을 확정받거나, 그 과정에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뒤 파면, 자진 사퇴 등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 모든 경우는 대통령 궐위에 해당해 헌법 68조 2항에 따라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