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50명 넘으면 안된다, 막아라"…그날 계엄군이 받은 지시

12·3 비상계엄 상황에서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에게 “국회의원 150명이 본회의장에 모이지 않도록 끌어내라”는 취지의 명령이 하달된 사실이 9일 새롭게 드러났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계엄군 지휘부가 헌법상 계엄 해제 의결 정족수인 국회 재적의원 과반(150석)을 정확히 지목하며 이를 저지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된다. 

국회 병력 작전을 주도했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육군 대령)은 이날 오전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곽종근 육군 특전사령관이 ‘국회의원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단다’, ‘들어가서 끌어낼 수 있겠냐’고 물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국방부는 곽 사령관에 대해 6일 부로 직무를 정지했다.

제707특수임무단장 김현태 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707특수임무단장 김현태 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단장은 이날 오전 6시 50분쯤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기습 공지'를 통해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근무지를 이탈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김 단장은 직속 상관인 곽 사령관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느냐는 질의에 “출동 시 정치인에 관한 어떤 명단 등은 일절 전달된 건 없었다”면서도 “정확히는 '국회의원들이 모이고 있단다', '150명을 넘으면 안된다니 막아라', '안 되면 들어가서 끌어낼 수 있겠냐'고 의견을 구했고 저는 '진입도 안 됩니다', '다른 무리수는 둘 수 없습니다'라고 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김 전 장관 등 군 지휘부가 계엄 해제안의 의결 정족수인 ‘150명’이란 숫자에 집착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헌법 제77조는 국회 재적 의원의 과반(150명)이 찬성할 경우 계엄은 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당시 4일 오전 12시 40분쯤 국회 재적 과반(151명)이 본회의장으로 진입했고, 이후 오전 1시 2분쯤 재석 190명, 찬성 190명으로 계엄 해제안이 가결됐다.


"'야, 빨리 의원들 끌어내' 김용현 지시 그대로 하달"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동장에 계엄군이 탄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동장에 계엄군이 탄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김 단장은 김 전 장관이나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진 않았지만, 김 전 장관이 곽 사령관에게 계속 전화로 지시를 하고 곽 사령관은 이를 자신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급급한 상황이었다고도 주장했다.“확인해보니 김용현 전 장관이 '야, 빨리 들어가서 국회의원들 끌어내' 이런 말을 한 것을 '야, 국회의원들 끌어내 달라니까 빨리 전달해' 이런 식이었다고 들었다”면서다. 이후 곽 사령관은 국회로 이동 중인 김 단장에게 전화해 "몇 분 남았느냐" "도착했냐" 등을 1, 2분 간격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김 단장에 따르면 707특임단에 출동 지시가 떨어진 건 당일 오후 10시 30분경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김 단장은 최초 지시는 "국회로 출동할 준비를 해라. 헬기 12대가 올 것이니 의사당과 국회의원 회관을 봉쇄하라"이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707특임단은 11시쯤 대원들을 모아 헬리패드로 이동을 완료했으나, 헬기 이동이 늦어져 대원 96명이 국회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50분쯤 이었다고 김 단장은 설명했다. 김 단장과 곽 사령관은 상황 시작부터 종료 때까지 주로 곽 사령관과 안보폰으로 약 30여통의 전화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서울 도발 있을 수 있다 장관 강조 부쩍 늘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이달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이달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단장은 김용현 전 장관이 연초부터 북한의 도발 위협을 자주 거론했고, 최근 들어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 등을 이유로 부쩍 경계 수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도발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강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엄 당일인 3일 오후부터 707특임단은 ‘비살상 무기를 사용한 무력 진압 작전’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일 훈련은 전날부터 계획했던 것이고,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테이저건이나 공포탄, 방패 등을 이용해 제압할 수 있는 훈련을 해보자는 것이었다"며 "낮에 이미 현장 훈련 검사에서 제가 필요한 방패라든지 인원을 포박할 수 있는 케이블 타이 이런 걸 잘 챙기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계엄 당일 실탄을 사용하지 않고 적대세력을 진압하는 것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훈련을 계획했다는 설명이다. 김 단장을 비롯한 현장 지휘관들은 '진짜 목적'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를 준비시킨 상부에선 ‘계엄 디 데이(D-day)’에 국회 진압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김 단장은 "(위협 상황에 대해)김 전 장관이 강조하는 강도가 매일 같이 높아지고 있었다"면서 "2~3일 전까지 이를 느꼈고, '도대체 무슨 정보를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실까'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일 곽 사령관은 김 단장을 포함한 특전사령부 지휘관 7명을 불러 오후 6시 식사를 하고 일단 대기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대원들, '우리 지금 뭐하냐' 자괴감 토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한이 통과된 뒤 출동했던 계엄군이 철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한이 통과된 뒤 출동했던 계엄군이 철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다만 707특임단은 정작 국회의 정확한 구조도 파악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국회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몰라서 티맵(사설 네비게이션)을 켜고 구조를 확인했다"는 김 단장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회 본청의 후문·정문 등을 사설 지도로 확인하고 현장에 투입된 탓에 대원들이 우왕좌왕했고, 이에 김 단장이 창문을 깨고 안으로 진입할 것을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김 단장은 본청 안으로 진입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마주쳤지만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등 “끌어내라”는 지시에 대해 ‘소극적 항명’을 했다는 주장도 폈다. 그에 따르면 707특임단 부대원들은 출동하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며 자괴감 섞인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김 단장 본인은 707특임단 대원들이 96명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부대를 복귀해보니 총 197명이 투입된 걸 뒤늦게 알았다고도 했다.

김 단장은 "국회 출동을 지시한 것은 저이고, 건물 내에 두 차례 진입 시도를 한 것도 저"라며 "부대원들을 사지로 몬 무능한 지휘관"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아는 범위에서 사령관과 그 이하 모든 사람들은 김용현(전 장관)에게 이용당한 것이고 많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