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든 대화상대는 尹대통령”…한·한 체제 다시 선그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미국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측 대화 상대가 현재 누구냐는 물음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불법적 계엄선포에도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검찰 수사로 출국금지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한국의 정치 절차는 한국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궐위’ 상태가 아닌 데다 직(職)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현재로썬 대한민국 헌법상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가 지난 8일 저녁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 당일 오전 발표된 이른바 ‘한덕수(국무총리)ㆍ한동훈(국민의힘 대표) 공동 국정운영 체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런 체제가) 한국 헌법에 부합한 조치인가”라고 물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관련해 사전에 공유된 정보가 없었던 미국 측은 “(윤 대통령의) 심각한 오판”이라며 비판한 바 있는데, 이후 여권에서 제시한 ‘한ㆍ한 체제’에 대해서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한덕수(왼쪽)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 수습 방안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왼쪽)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 수습 방안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이라고 한 밀러 대변인은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 윤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취재진 물음에 “(윤 대통령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관여 계획은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현시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 소통할 계획은 없다는 얘기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직무대행’을 자처한 한ㆍ한 체제를 대화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다 ‘사실상 직무배제’ 상태인 윤 대통령과의 정상적 소통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국무부는 검찰의 윤 대통령 출국금지 조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을 참조하라”고 했는데, 밀러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헌법’과 ‘법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보고 싶고 지난 며칠간 기쁘게 생각한 것은 불확실성의 시기에 대한민국이 보인 민주주의 회복력”이라며 “앞으로도 정치적 견해차가 법치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군이 동원되는 방식의 비상계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반영된 말로 풀이된다. 밀러 대변인은 이어 “사법 절차와 정치 과정은 일관되게 법치의 원칙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밀러 대변인은 한국의 정치적 혼돈 상황이 한ㆍ미 간 외교 협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 “한ㆍ미 동맹은 여전히 철통같이 굳건하다”며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4~5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계엄 선포 뒤 무기한 연기된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에 대해서는 “일정 재조정과 관련해서는 할 얘기가 없다”고 했다. 또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고위급 외교 당국자 간 협의와 관련해서는 “3국 동맹 강화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한 관여였으며 우리는 (이번 행정부) 임기 마지막 날까지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현지 교민 사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미시간대 앤아버 캠퍼스에서 이 학교의 한국인 대학원생들과 연구자, 교민들이 계엄 규탄 집회를 열고 시국선언문 낭독을 했다. 9일까지 900여 명이 동참한 시국선언문에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규탄하고 윤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지난 6일에는 하와이 주립대 소속 학생과 교민들이 현지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계엄 규탄 시위를 했다. 오는 12일에는 예일대와 코네티컷대의 합동 집회가 예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