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10일 본회의를 열어 야당이 제출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여야가 본회의 직전까지 만났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야당 안대로 4조1000억원 줄어든 내년 예산을 확정했다. 본회의에 참석한 국회의원 278명 중 183명이 찬성해 가결됐다. 헌정사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킨 건 처음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내외 악재에 대응할 여력이 줄고 불확실성이 증폭해 국가 신인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정 기관 예산을 대폭 삭감한 점도 두드러진다. 야당은 검찰·경찰·감사원의 특정업무경비(특경비)와 특수활동비(특활비) 678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마약·사이버·성범죄 등 민생 범죄 수사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도 모두 깎았다.
이밖에 ▶전공의 복귀 지원 931억원 ▶반도체·바이오·양자 등 미래 성장동력 연구개발(R&D) 815억원 ▶군 장병 인건비 645억원 ▶돌봄수당 384억원 ▶청년도약계좌 280억원 등 정부 역점 사업 예산도 감액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예산은 505억 원 중 497억원 삭감한 8억원만 남겼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산을 깎을 수 있지만, 기존에 정상적으로 진행한 사업을 전혀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감축”이라고 지적했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용(不用·예산으로 편성하고도 집행하지 않음)을 예상하거나 예산을 과다하게 추계한 사업으로 감액 범위를 한정했다. 감액 규모도 정부 안의 0.6% 수준에 불과하다”며 “예산이 부족하면 추경을 편성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수정할 수 없다. 최상목 부총리는 본회의 직후 “안타깝지만 통과된 예산을 기반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예산 집행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 예산부터 조정해 대응할 계획이다. 하지만 ‘건전 재정’ 기조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상황이라 쉽지 않다. 대내외 여건은 악화일로다. 내수(국내 소비)가 부진한데 경제 버팀목인 수출마저 ‘피크 아웃(peak out·정점을 찍고 하락) 우려가 나온다. 최근엔 탄핵 정국까지 악재만 줄줄이 돌출했다.
예산은 경기 침체를 돌파할 실탄이다. 결국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수입·지출 두 측면에서 추경 필요성이 커졌다”며 “내년 초 이른 시일 내에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경 편성권을 가진 정부 의지가 중요해졌다. 다만 정부가 추경안을 내더라도 국회에서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지역화폐 예산 등을 포함한 추경안이 아닐 경우 야당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얘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을 하려면 국가재정법이 정한 요건에 맞아야 한다”며 “감액 예산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