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이 다음 달 23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총력전에 나섰다. 오는 20일 주주명부가 폐쇄되기 전까지 내년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주주들을 대상으로 설득에 나선 것이다. 양측 모두 지분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라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이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1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시주총에서 이사회 재구성에 성공할 경우 주주가치 보호 방안을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MBK 측은 주식 액면분할을 통해 유통주식 수를 확대하고, 고려아연 보유 자사주(발행주식 총수의 12.3%)를 전량 소각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배당정책 공시를 정례화하고, 분리 선출하는 사외이사(이사회 감사위원)를 소수 주주가 추천한 후보 중 선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이사회 내 내부거래위원회 권한 강화, 투자심의위원회 신설 등도 약속했다.
이날 MBK 측은 고려아연의 현재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윤범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이사회가 최 회장의 독단 경영을 감시하지 못했고 고려아연의 주주 가치가 지속 하락했다는 것이다. 원아시아파트너스·이그니오홀딩스 등에 대한 투자와 자사주 공개매수로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며, MBK측이 구상하는 거버넌스 개선만으로도 총 3조4000억원 규모의 주주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모펀드 운용사라 제련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지적에 대해 김 부회장은 “고려아연은 기술력은 좋지만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MBK가 주총에서 승리해도 최 회장을 이사회에 참가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회장은 “MBK가 이사회에 진입한다 해도 최씨 가문이 20%가량의 주주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최 회장 등 최씨 가문이 이사회에 참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주 간 논쟁을 이사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MBK·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을 39.83%,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을 약 34%로 추산한다. MBK 측이 6%포인트 가까이 앞서 있지만, MBK 측도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 부회장은 이날 ‘지분 약 5%를 보유한 현대차가 중립을 지키면 판세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현대차가 중립을 지켜도 나머지 주주들이 모두 최 회장 편을 들면 우리가 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MBK가 발표한 주주가치 보호 방안이 지난달 고려아연이 발표한 방안과 대동소이한 ‘뒷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에서 소수주주다수결(MOM) 제도 도입, IR 전담 사외이사 선임, 분기배당 추진 등을 발표했다. 고려아연 측은 “(MBK 발표에는) 사업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전혀 없다”며 “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경제의 위기감이 큰데 투기적 사모펀드 MBK는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약탈적 M&A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듯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고려아연은 “MBK는 고려아연과의 비밀유지계약(NDA) 위반 여부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놔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MBK의 투자 운용 부문 중 한 곳인 ‘스페셜 시튜에이션스’는 2022년 고려아연의 신사업 전략인 ‘트로이카 드라이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명목으로 1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넘겨 받고 NDA를 체결했다. NDA에는 MBK의 전 계열사와 임직원 등이 올해 5월까지 고려아연의 공급사 등을 만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영풍도 공급사 중 하나다. 고려아연은 올 초부터 MBK가 영풍과 만나며 적대적 M&A를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광일 부회장은 이날 “영풍과 연초부터 만난 것은 아니다”라며 “(계약 체결 주체가) 다른 법인이라 우리는 잘 모르는 얘기”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