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특전사령관 전인범 - ‘12·3 계엄’의 문제점
“계엄 선포 순간 아웅산때 수준 고통”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집에서 글 쓰다가 ‘대통령이 긴급 담화한다’길래 TV를 켰는데, 갑자기 ‘계엄을 선포합니다’고 해서 처음엔 ‘가짜 뉴스인가’ 했어요. 그런데 화면에 ‘계엄 선포’ 자막이 뜨더군요. 41년 전 아웅산 테러 현장에서 당했던 트라우마급 충격이 뒤통수를 때리면서 눈앞이 하얘지더군요. 이어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특전사 대원들이더군요. ‘나라도 가서 말려야 한다’ 싶어 옷을 입는데 가족들이 말려요. 그 순간 여당 대표(한동훈)가 ‘계엄은 잘못된 거다. 국민과 막겠다’고 했다는 뉴스가 뜨길래 ‘계엄이 정권 전체의 뜻은 아니구나’하고 안심했어요. 그래서 TV로 현장을 지켜봤는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이어져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죠.”
예비역 장성이자 전 특전사령관으로서 계엄 소동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에 군을 끌어들인 점에서 명백한 위헌이고 불법입니다. 특히 특전사가 동원된 데 대해 전 특전사령관으로서 비참한 생각이 들어요. 다행스러운 건 우리 군이 맹목적인 군이 아니라 생각하는 군이란 점, 즉 국민에 총부리를 대면 절대 안 된다는 의식이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입니다. 이번 계엄은 불법적인 데다 준비도 주먹구구여서 여러 명 죽을 수 있는 위험을 자초했어요. 인명 피해 안 난 게 천만다행이죠.”
“불법 계엄 동원된 특전사 대원 배신감 시달려
헬기 운동장 착륙 등 위험천만한 순간 수두룩
불법 명령은 불응토록 사령관 시절 신신당부
국격 훼손·동맹 악화…불법 계엄 후과 엄청나”
헬기 운동장 착륙 등 위험천만한 순간 수두룩
불법 명령은 불응토록 사령관 시절 신신당부
국격 훼손·동맹 악화…불법 계엄 후과 엄청나”
전 특전사령관으로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우선 한밤중에 불빛 환한 서울시 상공을 헬기 3대가 날아 50분 만에 국회에 내리도록 한 거죠. 심야에 고층빌딩이나 전깃줄 같은 장애물이 많은 도시 상공에 헬기를 띄운 것부터 위험천만이죠. 착륙도 국회 운동장에 했는데 무슨 장애물이 있을지 몰라 착륙하면 안 되는 곳이에요. 당장 축구 골대가 보이던데 착륙 순간 무너졌으면 대형 사고 났을 겁니다. 또 야간엔 야간투시경을 쓰고 조종하는데, 의사당에 불이 켜져 있으니 역광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헬기끼리 충돌할 우려도 있었어요.”
다른 위험한 순간은요.
“국회에 진입한 군인들과 국회 관계자들이 대치한 순간이죠. 혹시라도 몸싸움이 벌어져 한 사람이라도 다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돼요. 다행히 현장 지휘관들이 ‘절대 민간인 다치지 않게 해라’고 당부했고 장병들도 잘 따랐기에 불상사를 막은 거죠. 그날 밤 국회에 군인 300명이 투입됐다는데 단 한명이라도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골이 송연합니다.”
임무도 모른 채 진입…“여기 왜 있지?”
특전사 707부대가 투입돼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원래는 수방사 예하 경비대를 동원하는 게 맞는데 워낙 주먹구구다 보니까 가장 빨리 출동할 수 있는 707부대를 쓴 거죠. 대테러 부대를 계엄에 동원한 것부터 문제인데 임무 설명도 없이 무작정 국회로 가라고 했다니 기가 막힙니다. 707부대는 일반 사단 특공대에 비해 사격량만 3~4배에 달하고 매일 8시간 고강도 훈련을 받는 부대입니다. 이런 최정예 부대가 ‘계엄 부대’로 낙인찍혔으니 대원들이 배신감을 토로할 수밖에요. 특전사 전체로도 ‘1980년 광주’에 동원된 오명을 씻기 위해 전력해왔는데, 또 계엄에 연루됐으니 대원들의 자괴감이 큽니다. 긴급 출동명령이 내려와 ‘북한이 도발했나 보다’는 생각에 헬기 탄 것뿐인데, 내려보니 국회여서 ‘우리가 여기 왜 왔지?’ 하고 있는데 ‘국회 진입해 누구누구 체포하라’고 하니 당혹감이 엄청났다고 해요.”
군인들이 의사당 창문 깨고 진입하는 모습이 논란이 됐는데요.
“정신없는 상황에서 진입 명령이 떨어졌으니 이행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문을 막고 있으니 할 수 없이 창문을 깨고 들어간 듯합니다. 원래 특전사는 해머 등 돌파용 도구들을 갖고 다니는데 그것도 없이 출동했대요. 그만큼 주먹구구였던 거죠.”
요즘 군인들 정훈교육에 민주주의도 들어있나요?
“군인 정신과 민주 시민 의식, 북한의 위협과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교육하죠. (상관의 명령이 불법이면 불응해야 한다는 것도 교육합니까) 나는 사령관 시절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군인은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다만 합법적인 명령만 따라야 한다. 명령의 합법 여부를 따지기 어려우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계급이 올라갈수록 그러면 안 된다. 명령이 합당한지 늘 따져야 한다’고 말이죠. 불법적인 명령을 따라놓고 ‘나는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다고 주장한 군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례도 가르쳤죠.”
“서운한 미국의 ‘경고’ 주목해야”
전 전 사령관은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과 유엔사 정전위 수석대표를 지낸 군내 대표적인 미국통이다. 36년 군 복무 중 훈장을 11개나 받았는데 ‘Legion of Merit’ 등 미국이 외국군에 주는 최고 공로훈장이 포함돼있다.
펜타곤(미 국방부)과 긴밀한 관계인데 계엄에 대한 워싱턴 조야 분위기는요.
“아주 서운해합니다. 계엄 한다는 통보는 못 해줘도 선포 직후에 주한 미국 대사한테 상황을 설명해주고 한국 내 미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얘기는 해줬어야 한다는 거죠.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등 미국 관리들의 방한이 줄줄이 취소된 건 워싱턴이 ‘경고’를 날린 겁니다. 심각하게 봐야 해요.”
북한은 조용한 듯한데요.
“속으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국회에 군인들 진입하는 장면 사진을 ‘남조선 군사파쇼의 실상’이라고 선전물로 두고두고 써먹을 겁니다. 러시아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측이 누구인지 드러났다’며 한국을 비웃는 메시지를 냈지 않나요.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훼손되고 미국에 서운함을 주고, 일본도 우리와 거리를 둬 한미일 훈련에도 제동이 걸렸죠. 계엄의 후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2기에 미국과 북한이 ‘빅딜’ 할 가능성은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사진은 찍을 수 있어도 딜은 성사되기 어려울 겁니다.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막는 게 목표인데 제재 풀어준다고 북한이 ICBM을 포기하리란 보장이 없거든요.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여유가 생겨, 사찰 등 미국의 요구에 어깃장을 놓을 공산이 큽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트럼프는 4년밖에 대통령 못 하는데 그 뒤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면서 ICBM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여길 겁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논란 등 한미동맹도 우려가 커지는데요.
“분담금이 현재 1조5000억원 규모인데 3조~4조원으로 올라갈 각오는 해야 합니다. 미군들이 내게 ‘국군은 1년 반 근무하는데 미군은 한국 오면 2년 근무한다’고 해요. 한국 방위는 한국이 부담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전부 철수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데요) 트럼프 측에서 그런 극단적 얘기를 하는 사람은 못 봤고, 오히려 트럼프 반대 진영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이는 있어요. 다만 현재 주한미군은 2만8500명 규모인데, 트럼프가 집권하면 ‘주한미군은 1만명이나 5천명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할 순 있어요.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서 우리는 ‘주한미군이 상황에 따라 한반도 밖에도 전개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 원칙에 동의해줄 필요가 있어요. 미군이 원하는 걸 인정해줘야 우리도 주한미군 규모를 유지할 카드가 생깁니다.”
“두개골 드러난 이기백, 들고 뛰었다”
1983년 10월 9일 북한의 아웅산 테러 당시 기적적으로 생존해 이기백 합참의장을 구한 일화가 있는데요.
“당시 이 의장의 부관이었어요. 이 의장을 모시고 아웅산 묘소에 갔는데, 방전된 카메라 배터리를 바꿔 끼려고 묘소에서 300m 떨어진 차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갑자기 ‘꽝!’ 소리가 나길래 돌아봤는데 그 참상이 지금도 슬로모션으로 눈에 밟힙니다. 무작정 묘소로 뛰어가는데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피투성이인 사람들이 널려있어요. 무서워 발이 안 떨어졌지만 ‘나는 군인이다’는 생각으로 묘소에 뛰어들었죠. 쓰러져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제 눈엔 이 의장만 들어왔어요. 양어깨를 붙들고 폐허에서 끄집어냈는데, 두피가 앞으로 벗겨져 두개골이 보이는 거예요. 이 의장이 ‘야, 아프다’고 하길래 주변을 둘러보니 양철판이 굴러다녀요. 그 위에 이 의장을 눕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판을 들고 응급실로 달려갔죠. 그때의 끔찍한 트라우마가 계엄 선포로 재연됐으니 정말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