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 시간이 흐른 후 대통령의 사과가 이어졌다. 다시 국회는 대통령 탄핵을 시도했으나 여당의 보이콧으로 안건을 개표하지도 못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탄핵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탄핵안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것이 지난 일주일간의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OK 목장의 결투’는 피했으나 아이들의 병정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으로 안타깝다.
상상조차 힘들었던 한밤중 계엄
상승세 대한민국호 심각한 타격
하야 포함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여야 정치인도 살신성인 자세를
상승세 대한민국호 심각한 타격
하야 포함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여야 정치인도 살신성인 자세를
계엄사령관의 ‘계엄포고문 1호’는 내용 하나하나가 어이없었다. 우리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한 집회, 결사, 언론 등의 자유를 모조리 부정하고 있었다.
2년 반 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서른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나는 ‘평등’은 왜 빠졌냐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신념만은 확고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임기의 반환점을 막 돌고 나자 그는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헌법이 보장한 불가침의 자유를 한꺼번에 박탈하려 했다. 의자에 앉아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모습은 ‘자유로운 시민이 사는 자유로운 나라’를 약속하던 취임 날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5·18 광주, 88 올림픽, IMF 체제 극복 등 희비 쌍곡선을 그리면서도 꾸준한 상승세를 타던 대한민국호가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계엄 당일 출동한 군이 군의 자제를 당부하는 성숙한 시민과 충돌했다면 한국은 파멸 위기까지 내몰릴 뻔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국내 정국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고,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그뿐인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 게다가 정보화까지 전 세계가 부러워하며 ‘K-OO’로 통칭되던 한국의 장점들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정치의 복원이다. 이번 사태는 그 원인이 용산과 여의도 사람들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 지도자가 되어 국민을 이끄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권력은 사실 무서운 것이다. 말꼬리 털 한 오라기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권력의 칼은 항상 나를 겨냥하고 있고 언제든지 나를 벨 수도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란 무엇인지를 묻는 계강자(季康子)에게 ‘정치란 바로 잡는 것(政者正也)’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앞장서서 바름으로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을 이끌기에 앞서 본인의 이익과 욕심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40여 년 전 서울대 법대 2학년 학생이던 윤 대통령은 궐석 모의재판의 재판장이 되어 전두환 피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들었다. 오늘의 윤 대통령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건의를 하고 싶다.
“스스로 하야할 각오를 하십시오. 혹시 당정, 여야, 국민이 일단 사태를 수습한 후 물러나라고 하면 그것을 따르십시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임기는 단축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가 스스로 파괴한 민심과 군심을 회복할 수 있는 첫 단추입니다.”
한편 지금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어떻게 되찾은 권력인데, 내줄 수 없다”라거나 “이제 다시 탈환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라며 정권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나는 그들에게 정중히 묻겠다. “당신들의 정권이 중요합니까? 대한민국과 국민의 안정과 번영이 중요합니까?” “당신은 대통령과 공동책임자로서 위기 해결에 혼신의 힘을 쏟은 후 차기 대권 후보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당신의 진정성은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그동안 의회를 이용한 자기방어에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까? 당신은 앞으로 남은 재판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을 준비가 돼 있습니까?”
나는 또한 여야 지도자들에게 충언을 드리고자 한다. “정권 수호나 쟁취에서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함께 국내외 기자들 앞에 서서 ‘우리 여야 정치인들이 이 위기를 함께 풀어갈 테니 잘 지켜봐 주시고 좋은 의견도 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번 나서주십시오.”
1980년 봄 당시, 마치 정권을 잡은 것같이 착각했던 이른바 ‘3김씨’는 대통령이 되기까지 12년, 17년이 더 걸렸다.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 전 서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