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가 국외출장을 이유로 항공권까지 조작해 18억여원의 예산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의회 직원 여비를 의원이 대납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도 117건에 달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방의회 국외출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항공권 조작과 여비 허위청구 등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고 16일 밝혔다.
권익위는 외유성 국외출장 논란 해소를 위해 243개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지난 2022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지방의회가 주관한 지방의원의 국외출장 실태를 전수 점검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지방의회의 국외출장은 915건에 달했고, 약 355억 원이 지출됐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의원이 동행한 출장까지 포함하면 1400건에 약 400억 원이 사용됐다.
점검 결과 지방의회 국외출장 상당수가 국외출장 관련 규정을 위반하고, 관광 목적의 일정을 수행하기 위해 부족한 비용은 여행사 대표 강연비·섭외비 등으로 예산을 지출하는 등 편법적으로 여행경비로 부풀려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항공권을 위변조해 예산을 부풀린 사례도 405건(44.2%)이나 확인됐다. A 의회는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발권한 후 이코노미석으로 위조해 금액을 청구한 뒤, 실제로는 이코노미석으로 발권받아 출장을 다녀왔다. B 의회는 항공권 항공료 부분을 직접 위조해 실제보다 많은 금액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의전 비용을 이유로 과도한 인원이 출장에 동원된 사례도 드러났다.
C 의회의 경우 의원 10명이 출장을 가며 직원 7명을 동원했고, 의원들이 직원 부담금 약 900만 원을 대신 납부했다. 이는 ‘공직선거법’ 제113조에 따라 금지된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같은 사례가 117건(13%)으로 집계됐다.
출장 명목으로 소주, 숙취해소제, 해장국, 피로회복제 등 부적절한 물품을 구입한 사례도 178건(19.5%)에 달했다. D 의회는 출장 중 라면과 김치 등을 약 200만 원어치나 구입했다.
또한 출장 지역 분석 결과 61개국을 방문했지만 상위 20개국 방문이 80% 이상을 차지했고, 일정 역시 관광지에 집중됐다. 싱가포르는 총 94건의 출장 중 가든스바이더베이(74회), URA시티갤러리(73회)를 방문한 경우가 많았다. E 의회는 호주 출장(4박 6일) 동안 블루마운틴 국립공원, 오페라하우스 등 관광지만 방문했다.
관광지를 방문하면서 가이드료, 입장료를 별도의 예산으로 지출한 경우도 33건(3.6%)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적 목적에 맞지 않아 환수처분이 필요하다.
권익위는 “이처럼 지방의회 국외출장이 위법하고 부적절하게 이루어진 것은 국외출장을 심사하는 기구인 공무국외출장심사위원회(심사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사위가 외유성 일정을 지적하면서도 출장 자체를 승인했으며, 의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 출장을 스스로 심사한 경우도 79건(8.63%)에 달했다.
이외 출장 취소에 따른 수수료를 과도하게 지급한 사례도 확인됐다. F 의회의 경우 출장을 취소했음에도 전혀 환불받지 않기도 했다.
권익위는 이번 점검에서 드러난 허위 비용 청구 등 범죄행위를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고, 징계 및 환수 조치를 해당 지방의회에 통보하고 조치 여부를 관리할 방침이다.
또한 개선 방안으로 심사위원을 전원 외부위원으로 구성하고, 출장 심사 시 상세 지출 항목과 금액을 포함하도록 했다. 또 심사받지 않은 항목의 지출을 금지하고, 출장 관련 정보를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 및 의회 홈페이지에 통합 공개해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이번 실태점검은 지방의회의 청렴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지방의회의 부패취약분야인국외출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점검 결과 확인된 위반사례를 교육하고 홍보해 지방의회에 올바른 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