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국회의장에 "탄핵보다 국회증언법 더 타격, 제발 재검토를"

탄핵 정국으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재계 회동이 잇따르고 있지만, 재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전력망 확충법 같은 지원책은 논의가 전면 중단됐는데, 국회증언법·상법개정안 같이 기업을 옥죄는 방안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거나 연내에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크다. 재계에선 “경영 활동에 직격탄이 될 법안이 줄줄이라, 기업들은 대통령 직무정지보다 국회 상황이 더 걱정”이라 토로한다.   

국회의장, 경제4단체장 간담회

국회의장, 경제4단체장 간담회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 4곳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비상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 회장)은 “여·야 모두 민생 안정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초당적 협력을 통해 무쟁점 법안만이라도 연내에 통과시켜 준다면 대한민국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긍정적 시그널(신호)이 되고, 거시 경제지표에 대한 우려도 사라질 것”이라고 요청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경제위기 인식을 공감하고 있고 한마음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자”라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재계는 한시가 급한 산업 육성 법안들이 많은데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기 어려워졌다는 데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여야 이견 없이 공동 발의한 무쟁점 법안 12건마저 '올스톱'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표 참조).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과 연구개발(R&D) 인력에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로 두는 내용 등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하고 기본 계획을 수립하자는 AI기본법, 전력망 인허가 절차 개선 방안을 담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이 있다. 경제단체들은 지난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에서도 무쟁점 법안을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하지만 재계는 국회가 기업 경영에 직격탄이 될 법안에만 속도를 내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28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 국회증언법 개정안이 있다. 기업이 개인정보 및 영업비밀 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이나 국회 증인출석을 거부할 수 없고 질병이나 해외 출장 등으로 직접 출석하기 어려운 경우엔 국회가 원격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17일 대한상의 등 경제 6개 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고 “의무적인 자료 제출은 기업 기밀과 주요 핵심기술 유출로 이어져 기업경영 활동이나 국가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회 소환에 응하기 위해 경영진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국회증언법이 ‘헌법이 정한 과잉금지 원칙이나 사생활 침해 금지 원칙,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회증언법을 포함한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던 만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바라고 있다.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야당이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는 상법 개정안도 재계의 우려가 큰 사항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이재명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상법 개정이나 법정 정년 연장 같은 사안을 국회에서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과 경제계 핫라인 만들어 자주 소통하자”며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오는 19일 상법개정안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제22대 국회 상법 개정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제22대 국회 상법 개정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상법 개정안엔 현재 ‘회사’로 제한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업들은 “이사들이 수많은 주주 각각의 이익과 손실을 따져 결정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사회의 결정으로 손해를 입었다는 주주들의 소송이 일 년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헤지펀드의 기업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고 무엇보다 기업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국회의장과 간담회에서 "경제에서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라며 "미국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대응이 기업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벅찬 만큼 국회에서도 각별히 신경 써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