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가라앉은 내수(국내 소비)가 탄핵 정국을 맞아 꽁꽁 얼어붙었다. 연말 경기의 바로미터인 송년 소비가 쪼그라들면서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4~13일 신용카드 일평균 사용액은 2조5102억원을 기록했다. 1달 전인 11월 4~13일 신용카드 일평균 사용액은 2조5953억원이었다. 연말 소비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사용액이 전월 대비 3.3% 줄었다.
한국신용데이터 조사도 비슷하다. 이달 첫째 주(2~9일)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의 신용카드 매출은 지난해보다 9% 줄었다. 탄핵 정국이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골목 상권을 흔든 셈이다.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아우성도 커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6일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505명을 긴급 설문한 결과 46.9%가 “비상계엄 사태로 직·간접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1630명을 긴급 설문한 결과 88.4%가 “비상계엄 사태로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답한 경우도 36%에 달했다.
최근 정·관계를 중심으로 송년회를 독려하고 나선 까닭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14일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며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다.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같은 날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당초 계획했던 모임과 행사를 진행해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도 최근 시·도 부단체장 회의에서 “지자체 주관 축제·행사나 각종 송년 모임을 예정대로 추진해달라”고 주문했다.
금융권에서도 송년회 재개를 당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금융·KB금융 등은 최근 비상대책 회의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본사와 영업점의 연말 송년회 등 모임을 정상화하도록 주문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한번 꺾인 송년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지 못해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일련의 사태로 인한 예약 취소와 소비 위축으로 송년 특수는커녕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의 처지가 극한으로 내몰렸다"며 "국면이 전환된 만큼 국민 여러분께서도 안심하고 거리를 밝게 비추는 소상공인 매장을 찾아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 들어 회복하던 해외 관광객 수요마저 꺾이는 분위기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10월 누적 방한객은 1374만 명이다. 1년 전보다 54.7% 늘었다. 식어가는 내수에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가 그나마 온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 상황이 주요 외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주요 국가가 한국 여행 주의보를 내리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방한 관광객 감소가 장기화할 경우 여행·항공·숙박·음식업 매출에 악영향을 미쳐 내수 침체가 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덕수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상황에서 당정이 처음 논의할 주제도 내수 진작 대책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20일 처음 열리는 고위 당정협의회를 앞두고 “카드 수수료 경감, 폐업한 자영업자를 위한 채무 만기 연장, 은행권의 소상공인 금융 지원 방안 등 내수 진작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카드 소득공제 확대 ▶중소기업 직장인 휴가비 지원 ▶온누리상품권 구매 한도 및 사용처 확대 ▶국내 여행 대상 숙박 쿠폰 지원 등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내수를 띄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탄핵 정국을 떠나 이미 고물가로 실질 소득이 줄어든 가계가 선뜻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가 워낙 침체한 만큼 기준금리 인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같이 쉬운 길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금리 인하, 추경 편성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규제 완화나 부실기업 구조조정, 노동 개혁같이 어려운 과제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