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경기에 대한 하방 압력이 큰 상황에선 추경 처리는 빠를수록 좋다”며 “늦게 하면 할수록 내년에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와 정부가 논의해 빠른 시일 내에 추경을 편성해야 하다는 제언이다.
추경 편성권을 쥔 기획재정부도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다. 당초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6일까지만 해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선 추경과 관련해 “국회에서 통과한 예산이 내년 1월 1일부터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기재부 관계자도 “아직 예산 집행도 시작 안 했는데 벌써 추경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이튿날 국회에 출석해 “(추경과 관련해) 내년도 대외 불확실성 및 민생 상황을 봐가면서 적절한 대응 조치를 계속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입장을 선회했다. 이날 외신간담회에서도 그는 “내년 예산이 막 통과됐기 때문에 신속한 집행준비에 만전을 기할 시점”이라며 “다만 앞으로 상황 변화나 민생 상황, 통상환경 변화 등에 따라 적절한 정책 수단을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결국 정부의 재정 집행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이르면 내년 1월엔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선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야당과 충분히 조율하되 너무 늦지 않게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현실적으로 내년 중순 이후가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 막 예산이 통과됐는데 바로 추경을 편성하면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다”며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내년도 예산 가운데 75%를 상반기에 쓰기로 했다. 우선 상반기에 예산을 집행해보고, 필요한 만큼 추가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면 아예 새 정부가 출범하는 등 정국이 안정된 이후 추경을 편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추경뿐만 아니라 금리 인하 시점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재정 확대를 뒷받침하고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선 기준금리를 낮출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은 사실상 정치적인 영역으로 넘어간 만큼 언제 가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1월엔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은 섣불리 금리를 인하하면 자칫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길까 우려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됐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 총재도 지난 17일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한 달 정도 경제지표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