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적을수록 고물가 충격 더 컸다...저가 상품 가격 상승률이 고가의 3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4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4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 급등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의 가격이 더 크게 오르는 ‘칩플레이션(Cheapflation)’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적을수록 저가 상품을 주로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이 받은 고물가 충격이 훨씬 더 컸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시기에는 중·저가 상품의 가격 안정에 좀 더 집중해서 이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한국은행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1월부터 2023년9월까지 저가상품 가격 상승률은 16.4%에 달했다. 같은 기간 고가상품 가격 상승률(5.6%)의 약 3배 수준이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햄이 1164원으로 164원 오를때, 2000원짜리 햄은 2112원으로 112원 인상에 그쳤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2019년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동일 품목 내 다양한 상품들을 가격에 따라 1~4분위로 구분한 다음 지난해 9월까지 얼마나 가격이 올랐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판매율과 가격 상승률이 높은 가공식품(소시지 등)으로 한정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칩플레이션은 가격이 싸다는 의미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칩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에서도 칩플레이션이 나타난 이유는 우선 공급 측면에선 팬데믹 이후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서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 병목, 우크라이나 및 중동 전쟁 등으로 수입 제조용 원재료의 국내 공급물가가 국내 생산·출하 원재료에 비해 더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저가 상품일수록 가격을 낮추기 위해 국산보다 수입산을 많이 사용하는데 보통 마진(원가와 판매가의 차액)이 작기 때문에 수입 원자재가격이 급등한 만큼 판매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요 측면에서는 물가 부담이 커지다보니 조금이라도 싼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저가 상품의 가격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통상 가계는 고물가 시기에 소비 패턴을 바꿔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부담을 줄이려 한다. 예컨대 이전에 소비하던 상품과 비슷하지만 더 싼 상품을 구매하거나, 같은 상품이더라도 더 싸게 판매하는 곳을 찾는 식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문제는 칩플레이션이 소득 수준에 따른 ‘인플레이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2019년 4분기부터 2023년 3분기까지 하위 20% 저소득층의 실효물가(체감물가) 누적 상승률은 13%였다. 같은 기간 상위 20% 고소득층(11.7%)에 비해 1.3%포인트 높았다.  

 
조강철 한은 물가동향팀 차장은 “저소득층이 더 고통받는 칩플레이션은 물가 급등기에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며 “통화정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정책 측면에서는 중저가 상품의 가격 안정에 집중함으로써 취약계층의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할당 관세나 가격 급등 품목에 대한 할인 지원 때 중저가 상품에 선별 지원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한편 향후 물가 전망과 관련해 한은은 “현재 1%대로 낮아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내년에는 목표수준인 2% 부근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물가안정 기반이 공고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에 대해선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상승 흐름 등을 고려하면 향후 1~2년 내 1% 이하의 저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향후 국내 경제가 1%대 후반의 성장세(2025년 1.9%ㆍ2026년 1.8%)를 보이고,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와 밀접한 민간소비가 2% 안팎의 증가세(2025년 2.0%ㆍ2026년 1.8%)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면 저성장ㆍ저물가가 고착화될 수 있다”며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