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아픔' 지운 아웃사이더 기타리스트 "한국에 평화 전할 것"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지난 19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따스했다. 장진영 기자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지난 19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따스했다. 장진영 기자

"갓 태어난 딸을 안았는데 머리가 너무도 작고 따듯한 거예요.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49)에게 지난 19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돌이 되기 전에 벨기에로 입양됐던 그의 꿈은 줄곧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딸 수아가 2019년에 태어난 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했다. 그가 지난 1년 작업한 새 앨범에도, 다가오는 27일 여는 콘서트에도 평화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앨범과 콘서트의 제목과 주제는 '그레이스(Grace)'. 우아함과 숭고함, 신의 은총 등을 뜻하는 이 단어는 아버지가 된 드니 성호의 현재를 오롯이 반영한다. 콘서트를 열 장소로 그가 고른 곳은 부산. 입양의 아픔을 평화의 선율로 담고 싶다는 뜻도 녹였다.  

그는 "입양됐다는 건 마음 어딘가가 심하게 고장 났는데 고칠 수 없는 상태와 같았다"며 "슬픔과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의 진화 단계를 거쳐 이젠 평화를 찾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인생엔 각자의 아픔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며 "그것을 마주하고 직면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표정이 온화했다.  

드니 성호에게 기타는 가족과 같다. 장진영 기자

드니 성호에게 기타는 가족과 같다. 장진영 기자

 
변화의 계기는 역시 딸의 탄생이다. 그는 "아버지가 되면서 '나는 나로 충분하다'는 감정을 갖게 됐다"며 "예전엔 '잘한다는 걸 증명해야만 해'라는 압박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연주하는 속도가 빨라지곤 했는데 이젠 좀 더 성숙해진 것 같다"라고도 덧붙였다. 갓 태어난 딸을 안았을 때 그가 느꼈던 따스함은 그가 처음으로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 선율을 듣고 받았던 느낌과 닮았다고도 했다. 그는 벨기에의 젊은 영재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냈고, 미국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는 꿈도 이뤘다. 이젠 기타리스트뿐 아니라 예술감독 등 외연을 확장할 채비도 하고 있다. 

이번 콘서트엔 일본의 배우 겸 가수, 쓰치야 안나(土屋アンナ)도 출연한다. 쓰치야 안나는 중앙일보에 "드니 성호의 기타 선율을 듣고 있으면 마음속의 아픔을 알아주고, 부드럽게 치유해주는 느낌이 든다"며 "(클래식과 팝이라는) 음악 스타일은 다르지만 조화를 이룰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드니 성호는 "클래식과 팝, 한국과 일본이라는 다름을 하나의 하모니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화는 그가 오랜 기간 추구해온 가치이기도 하다. 그는 "나는 어디에 가든 항상 아웃사이더였다"며 "하지만 어느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는 건 오히려 다양함이라는 가치를 올려주는 좋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름을 섞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건 그가 앞으로도 평생 해나갈 일이다.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는 2025년엔 도쿄 기타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도 데뷔한다. 장진영 기자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는 2025년엔 도쿄 기타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도 데뷔한다. 장진영 기자

 
그런 면에서 내년은 드니 성호에게 또 다른 도전의 해가 될 전망이다. 도쿄 기타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도 위촉됐고, 무대에도 설 예정이어서다. 한국과 벨기에를 오가며 활동했던 그이지만, 딸이 태어나면서 한국을 주 무대로 삼은 그가 새로운 확장을 하는 셈이다.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음악가들을 모으고 싶다는 게 포부다.  

그는 "정치를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나는 시대이고, 모두가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하는 힘든 시대인만큼, 음악을 통해 조화와 아름다움, 무엇보다 평화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부산 공연 객석엔 그의 딸 수아도 앉아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