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12ㆍ3 비상계엄 사태’의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육사 41기)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표현이 적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또한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 수첩에 ‘오물 풍선’ ‘사살’이란 표현이 있는지 묻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해당 수첩은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의 60~70 페이지 분량으로, 계엄 관련 내용이 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지난 15일 국수본은 노 전 사령관을 긴급체포하면서 그가 무속인 활동을 한 곳으로 알려진 경기 안산 소재 점집을 압수수색해 수첩을 확보했다.
계엄에 북풍 이용하려 한 정황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일반이적죄(형법 99조)로 고발했다. 북한의 오물풍선에 원점 타격 및 무인기 침투 등으로 대응해서 의도적으로 북한을 도발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일반이적죄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우 본부장은 행안위에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오물 풍선이란 표현이 들어 있었나(윤건영 민주당 의원)”는 질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또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엔 ‘국회 봉쇄’ 및 ‘정치인ㆍ언론인ㆍ종교인ㆍ노조(노동조합)ㆍ판사ㆍ공무원 등 수거 대상’이라는 내용도 적힌 것으로 파악됐다. 국수본은 수첩에 담긴 ‘수거 대상’이란 표현이 체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들에 대한 수용 및 처리 방법에 대한 언급 또한 수첩에 담겼다. 국수본에 따르면 수첩에서 수거 대상으로 꼽힌 정치인ㆍ언론인ㆍ종교인 등 중에서 일부 대상자는 실명이 적혀 있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계엄령 포고문 초안과 관련된 내용이 담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은 지난 14일 노 전 사령관을 계엄령 포고문 초안 작성자로 지목한 바 있다. 우 본부장은 행안위에서 “수거 대상을 일종의 격리·체포의 의미로 보고 있다고 했는데, 사살이란 표현이 있었는가(윤건영 의원)”는 질의에 “말씀하시는 게 거의 (사실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인ㆍ언론인ㆍ종교인 등 '수거' 및 사살?
국수본은 지난 1일과 비상계엄 당일인 3일 두 차례 이뤄진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이 노 전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별도 수사 조직을 구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국수본은 국방부로부터 김용현 전 장관이 포고령 발령 이후 전달한 명령 문건도 확보했다. 해당 문건을 근거로 해서 당시 국방부는 수사 2단의 단장부터 부대원까지 약 60여 명의 현역 군인의 이름이 담긴 인사 문건을 작성했다고 한다. 국수본 관계자는 “계엄 이후 합동수사본부 산하에 별도의 수사 2단을 구성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 2단은 3개의 부로 구성된 구조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서버 확보’를 임무로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내용을 파악한 국수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는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전후 김용현 전 장관과 만나거나 통화한 정황을 근거로 계엄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라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에 구속된 김 전 장관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협조를 요청했다. 특수본은 이날 “지난 21일 공수처가 김 전 장관을 조사할 수 있도록 협조했고, 경찰이 조사하도록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수본은 공수처와 협조해 지난 20일 김 전 장관 조사를 위한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국수본은 이날 김 전 장관을 상대로 접견·서면조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김 전 장관은 “일괄 진술을 거부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사 거부
국수본은 윤 대통령이 계엄 당시 사용한 ‘보안 휴대전화(비화폰)’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처에 관련 자료 증거 보전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날 보냈다. 앞서 국수본은 지난 17~18일 비화폰을 지급ㆍ관리하는 경호처에 서버 등을 압수수색하려 했지만 경호처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국수본은 박종준 경호처장 및 대통령실 관계자 2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한 상황이다.
아울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으로부터 내란 혐의 등으로 고발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해선 “오는 26일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앞서 한 차례 법원에서 기각된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과 그 주변의 폐쇄회로(CC)TV 압수수색영장은 재신청을 거쳐 지난 19일 발부 받았다. 안가는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계엄 당일 오후 7시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을 만난 곳으로 지목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