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ㆍ산책 빼고는 종일 바이올린" 16세 김서현의 완벽주의

2008년생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지난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여러 무대에 서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8년생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지난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여러 무대에 서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은 내년의 첫 협연자로 김서현(16)을 낙점했다. 올해 초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의 온라인 연주 영상을 보고 내린 결정이다. 김서현의 다음 달 10일 협연에 대해 서울시향 측은 "2005년 법인화 이후 신년음악회 최연소 협연자"라고 했다.

KBS 클래식 FM도 김서현을 발견했다. 이달 19일 발매된 ‘2024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음반에 김서현이 최연소 연주자로 포함됐다. 2019년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 유망주를 발굴하는 시리즈다. 음반을 제작한 KBS의 김경정PD는 김서현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으로 노련하게 선율을 만드는 탁월함에 귀가 번쩍 뜨였다”고 했다.

눈 밝은 이들이 알아보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은 2023년 스위스의 티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2022년 열렸던 같은 콩쿠르의 주니어 부문에는 나이 제한(만 14세)에 한 살이 모자라 참가하지 못했고, 이듬해 나이 상한선(26세 미만)만 있는 성인 대회에 참가했고, 우승했다. 티보 바르가 콩쿠르는 내년 대회부터 출전 가능한 나이에 하한선(17세)을 뒀다. 아무래도 ‘김서현 효과’다.

김서현은 높은 집중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주자다. 해외에서도 김서현을 알아본다.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티보 바르가의 아들인 길버트 바르가는 콩쿠르 우승 이후 김서현에게 G.B.과다니니 악기를 후원해 줬다. 연주 요청도 이어져 김서현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와 함께 스위스 취리히에서 내년 5월 실내악을 연주한다.

1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서현은 말이 거의 없고 음성도 조용했다. 무대 위에서 음악을 무섭게 끌고 나가는 모습은 돌변에 가깝다. 그는 “말로 표현 못한 감정을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는 희열이 있다”고 했다. 김서현은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홈스쿨링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이올린은 처음부터 좋았나요?
“연습을 재미있게 했었던 기억이 나요. 한국 나이 일곱 살에 종이 바이올린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할 때마다 확확 달라지는 게 느껴져서 보람이 있었어요. 공부와는 달리요.”
 

예원학교에서 공부도 올 A를 맞을만큼 잘 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데 공부는 정답이 딱 있고 틀이 있는데 음악은 아니니까요.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다른 악기도 했나요?
“피아노로 시작했는데 악보 읽는 실력이 느렸어요. 그런데 바이올린은 악보가 아니고 귀로 듣고 찾는 방식으로 배웠거든요.”
 

연습은 어떻게 했나요?
“밥 먹거나 산책할 때 빼고는 그냥 하루 종일 해요.”
 
이때 김서현의 어머니가 답변을 이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서현이는 이미 방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특히 오후에 일정이 있는 날은 더 그러죠. 연습에 강박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가 많아요.”

어떻게 그렇게 연습에 매진하나요?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싶지 않나요?
“그렇기도 하지만…. 뭔가 해야할 게 있으면 걱정이 많은 편이라서요.”
 
김서현의 어머니는 또 다른 장면을 전했다. “공연을 앞둔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에 가보면 가끔 울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소리 없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요. 마음에 안 드는 거죠.” 김서현은 “좀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쉬워서 그랬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지난해 티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사진 김서현 제공

지난해 티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사진 김서현 제공

 

본인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을 때는 없나요?
“무대가 끝나고 기분이 막 좋았던 적은 없어요. 100% 마음에 들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지난해 콩쿠르에서는요? 우승 무대였는데?
“사실은 그때 연주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공연장이 일단 너무 더워서 안간힘을 써서 했는데…. 그래서 기분이 좀 안 좋았었는데 상을 받아서 얼떨떨했어요.”
 

연주할 때는 어떻게 표현을 하려 하나요?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도 있고, 생각을 많이 하기 보다는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음악의 감정이 깊어요.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나요?
“예를 들어 이번에 녹음한 쇼숑의 포엠(시)에는 정말 여러 감정이 있어요. 쓸쓸함, 불타오르는 열정, 고독함…. 그런데 클라이맥스를 거쳐 조용하게 끝나잖아요.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16세에 모두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일텐데요.
“상상을 많이 해요. ‘한 사람이 몇 살에 이런 감정을 느낄까’ ‘가장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때 어떤 감정일까’ 하고요.”
 

책을 비롯한 간접 경험을 많이 하나요.
“많이 읽으려고 노력해요. 요즘에는 고전을 시작해서 『오만과 편견』을 읽었고 『블랙뷰티』도 읽었어요. 슬픈 영화를 좋아해요.”
 

음악은 바이올린 곡을 많이 듣나요?
“바이올리니스트 중엔 야니네 얀센을 좋아해요. 얀센의 실제 연주를 두 번 봤는데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올 여름 같은 페스티벌에서 연주해 정말 좋았어요. 또 교향곡을 좋아해서 베토벤ㆍ브람스ㆍ말러를 많이 들어요.”
 
김서현의 내년 공연 스케줄은 꽤 촘촘하다. 1ㆍ2월 헝가리와 에스토니아에서 협연, 2월 서울 금호아트홀연세에서 독주회, 5월 스위스에서 협연과 실내악 연주를 하고 7월 이탈리아의 실내악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그때마다 연주곡도 바꾼다. 비예나프스키ㆍ모차르트ㆍ쇼숑 등을 연주하는 일정이다. “최대한 많은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김서현은 “미래에 대해 자꾸 걱정하게 되는데 지금에 충실하고 집중하도록 생각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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