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안전한 세상”…탄핵집회에 키즈버스 대여한 워킹맘

아이를 데리고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덕분에 집회에 올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셔서 뿌듯했어요.
 

지난 14일 탄핵집회 당시 여의도공원 인근에 주차된 키즈버스. 사진 독자제공

지난 14일 탄핵집회 당시 여의도공원 인근에 주차된 키즈버스. 사진 독자제공

 
두 번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있던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공원에 모인 20만 인파 사이 ‘키즈버스’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은 버스 두 대가 세워졌다. 버스에는 어린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부모들은 버스 안에서 아이 밥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았고, 의자에 기대 한숨 돌리기도 했다. 버스에는 이날 하루에만 200여명이 방문했다. 

이 버스를 대여한 건 16개월 딸 지우 엄마인 권순영(44)씨다. 권씨는 2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1차 탄핵안 표결이 있었던 지난 7일, 유모차도 없이 아이를 안은 채 당산역에 내려 국회 앞까지 걸어갔는데 팔이 너무 아팠다”며 “집회 현장에 도착해보니 기저귀 갈 곳도 없고 아이에게 간식이나 밥 먹일 장소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키즈버스가 있다면 한 번쯤 더 집회에 올 용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슷한 처지인 분들이 많을 것 같아 버스를 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해 마련된 키즈버스 내부. 버스에서 쉬던 휴식을 취하던 아이가 피켓을 들고 외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해 마련된 키즈버스 내부. 버스에서 쉬던 휴식을 취하던 아이가 피켓을 들고 외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해 마련된 키즈버스 내부. 간식, 물티슈, 일회용 기저귀 교체 시트 등 기증 물품이 쌓여있다. 사진 독자제공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해 마련된 키즈버스 내부. 간식, 물티슈, 일회용 기저귀 교체 시트 등 기증 물품이 쌓여있다. 사진 독자제공

 
권씨는 다음날부터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한 용도로 버스 대여가 가능한 업체를 수소문했다. 한 업체는 정치적인 집회라는 이유로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여가 가능하다는 업체를 찾았다. 버스 1대를 대여하는 데 드는 비용은 66만원이었다. 권씨는 사비로 버스를 빌리기로 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지인 등에게 키즈버스 운행 소식을 알렸다. 소식은 맘카페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오픈채팅방 참여 인원도 금세 340명이 됐다.

처음 1대만 빌리기로 했던 버스가 2대로 늘어난 건 이들 덕분이었다. 그는 “오픈채팅방을 열자 카카오페이로 후원금이 도착했다”며 “처음엔 안 받겠다고 했지만 익명으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아 사용처를 공유하기로 하고 결국 후원금을 받았다”고 했다. 후원 금액대는 1만원부터 50만원까지 다양했다. 집회 당일 키즈버스에 분유, 간식 핫팩, 기저귀 등 각종 물품을 두고 간 시민들도 많았다.


권씨는 “여태껏 살면서 누군가한테 돈을 썼던 기억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이번엔 집회에서 수백만원씩 선결제를 해 준 사람들 소식을 계속 보면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며 “계엄 선포 후 우리 아이가 무서운 세상에서 자라날까 걱정했는데 시민들이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은 것처럼, 아이도 안전한 세상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