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든 돈이 정말 수천엔이냐고 다시 묻자 그가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며 웃었다. “간혹 돈을 통장에 넣어서 이불 밑에 쌓아두다 세상을 뜨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입을 뗐다. “돈보다 도전할 일이 있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냈다는 자부심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반문도 했다. 창업한 지 올해로 55년. 그는 번 돈을 모두 엔젤투자자로 회사 명의로 타 벤처에 투자하거나 네팔 등지에서의 우물 파기 사업, 40명이 넘는 아이들 후원에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월 3000엔의 첫 회원을 모집하는 데만 반년이 걸릴 정도로 순탄치 않았다. 새 방향이 생겨난 건 1971년의 일이다. 육아 스트레스를 못 견딘 부모가 아이를 유기하는 사건이 늘어나자 “엄마들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육아 상담 전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아기 110번’. (110은 일본 경찰신고 전화번호다) 전례 없는 서비스에 전화는 폭주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규제 때문에 전화 요금에 서비스 비용을 얹어 청구할 수가 없었다. 십수년에 걸친 규제와의 싸움 끝에 요금 제도는 1988년에서야 바뀌었다. 그는 ‘안 먹는 아이 110번’, 어르신을 위한 ‘황혼 110번’과 같은 특화한 상담 서비스로 폭을 넓혔다. 소셜 비즈니스 형태로 업태를 바꾼 다이얼서비스는 지금도 학대, 심리 상담 서비스 등을 담당하고 있다. 곤노 대표는 “비즈니스 덕에 일본 전역의 아이들과 엄마들, 어르신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 회장과의 인연을 묻자 그는 주저하며 옛 얘기를 꺼냈다. 21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건 40여년 전. “규제를 바꿔보려다 금융심의회 등 여러 정부 심의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당시 갓 사업을 시작한 손 회장에게 사람들을 소개해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인연 덕에 손 회장 동생인 손태장 미슬토 회장이 그의 회사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사람을 재산으로 만드는 비결을 묻자 그는 “남이 뭐라 하든 바른 말을 잃지 않고,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듣기 좋은 소리로 ‘타협’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는 “올해 88세지만 회사를 ‘졸업’할 생각은 없다”면서 “일하기에 정말 좋은 나이가 됐다. 내 인생이 끝날 때 참 열심히 살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