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간 공무원으로 근무해 온 B씨(60)는 지난해 11월 퇴임 직후 곤경에 처했다. 직장을 그만두면 재직 시절 받은 신용대출 7000만원을 일시에 상환해야 하는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다. 소득이 줄어든 B씨는 결국 최대 35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6%대 고금리 신용대출(새희망홀씨대출)로 절반을 상환해야 했다. 나머지는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B씨는 “매달 나가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과 생활비를 생각하면 여전히 막막하다”며 “노년도 빚을 갚다가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대 저성장 위기 속에서 고령층의 빚 부담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은퇴 후 창업에 나선 고령자가 늘면서 자영업의 위기가 고령층의 위기로 전이되기도 쉬운 구조다. 고령층의 소득 수준을 높이거나 부채를 줄이는 건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체계적이고 세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내 집 마련 등을 위해 대출을 늘려 온 베이비붐(1955~63년생) 세대가 빚이 남아있는 상태로 은퇴했거나, 퇴직 후 자영업 진출ㆍ생활비 부족 등으로 대출을 일으키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 개인 창업자 중 고령층 비중은 2011년 이후 꾸준히 상승세다. 마이크로데이터 분석 결과 지난해 11월 기준 고령 자영업자는 215만8000여명으로 전체의 37.8%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냉랭하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말 기준 65세 이상 자영업 차주의 대출 잔액은 평균 4억5000만원인데 반해 연 소득은 평균 4600만원에 그쳤다. 10년 동안 안 쓰고 모아야만 갚을 수 있는 부채 규모다.
만약 경제성장률이 -0.5%로 떨어지고,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5.4% 하락하는 등 심각한 거시경제 충격이 발생할 경우 2026년 고령층 연체가구는 3.3%포인트 증가한 6.1%로 가장 타격이 컸다. 같은 상황에서 중년층 연체가구는 2.2%포인트, 청년층은 3%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일수록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에 묶여있다 보니 집값 하락 시 연체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령층 부채 비중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0%를 넘어서며 유엔 기준에 따른 ‘초고령사회’가 됐다. 게다가 한국은 고령층의 소득 대비 부채 수준이 주요국에 비해 이미 높은 편이다. 2023년 기준 65~74세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30.9%로 미국(74.3%), 일본(32%)에 비해 훨씬 높았다. 미국ㆍ일본을 비롯해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반면 한국은 120% 내외의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심화하면 금융기관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고령층 차주는 평균 17년 이상 분할상환 등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며, 은퇴 등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시기임을 고려할 때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금융기관의 잠재 리스크”라고 짚었다. 이어 “고령층의 부채 및 소득여건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금융ㆍ고용ㆍ복지 분야를 연계한 정책적 지원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며 “고령 차주를 대상으로 금융교육과 재무상담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집은 있지만, 생계비 마련이 어려운 고령층을 위해 주택연금(역모기지론)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층 자산 중 부동산 자산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자산을 현금화해서 유동화시킬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며 “역모기지론으로 안정적인 노후 소득이 보장되면 무리하게 창업을 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