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헌법재판소가 3일 재판 준비 절차를 마치고 오는 14일 정식 재판에 들어가겠다며 향후 다섯 차례 기일 날짜를 미리 밝혔다. 추가 변론준비기일을 포함해 재판 준비 기간을 충분히 보장해달라는 윤 대통령 측 주장과 달리 헌재가 주 2회꼴 변론으로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정식 재판은 윤 대통령 탄핵 소추 후 31일 만이다.
정형식(왼쪽),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회 변론준비기일에 입장한 모습. 연합뉴스
이날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수명 재판관인 이미선 재판관은 “두 차례 변론준비기일을 통해 청구인 측 (주장)은 어느 정도 정리됐고 대부분의 증거가 제출됐다”며 “본격적인 변론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1차는 오는 14일, 2차는 16일, 3차는 21일, 4차는 23일, 5차는 설 연휴 후인 내달 4일로 잡았다.
1차를 넘어 다음 변론기일까지 바로 잡은 데 대해 이 재판관은 “피청구인 본인(윤 대통령)이 (1차 변론기일에) 나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법 52조는 ‘당사자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다시 기일을 정해야 한다’(1항), ‘다시 정한 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당사자 없이 심리할 수 있다’(2항)고 규정한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심판에 출석하지 않았으나, 윤 대통령 측은 “정식 변론 절차에는 적절한 시기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와 말할 것”(지난해 12월 27일 1차 변론준비기일)이라고 밝혀왔다. 실제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경우, 자신의 탄핵심판에 출석한 첫 대통령이 된다.
尹 “충분한 시간 달라” vs “재판 지연 의도”
이날 이 재판관의 변론기일 지정은 80분간 진행된 변론 내내 윤 대통령 측이 요청한 것과 다른 결론이다. 윤 대통령 측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이렇게 고립된 약자가 되는 건 처음 겪어봤다. 한마디만 나가면 난도질당하는 상황”이라며 “졸속 심리는 안 된다.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배보윤 변호사가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2차 변론준비기일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재판부에 ‘사건 접수 날부터 180일 이내 종국 결정해야 한다’(헌재법 38조)는 규정도 언급했다. “충분한 심리를 원하는 당사자에게 180일이 보장돼야 한다. 피청구인 입장에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며 “특히 대통령 탄핵은 개인이 아닌 국가원수 행정 수반에 대한 것이므로 180일 기간이 무시돼선 안 된다”고 했다.
심리 기간을 보장해 달라는 과정에서 청구인인 국회 측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윤 대통령 측은 국회 소추의결서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지연을 하는 것”이라며 “만약 윤 대통령 측의 태도를 봐서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보이면 변론 절차를 바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윤 대통령 측은 “지연해서 저희가 얻는 게 뭐냐”며 “3주밖에 안 됐는데 소송 지연 프레임 씌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청구인 측에서 입증책임을 져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증거를 제출한 것은 언론보도밖에 없다. 소추의결서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청구인 측이) 제출하지 않아 답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줄곧 “신속 심판”을 주장한 국회 측은 이날 탄핵소추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 위반 부분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국회는 당초 탄핵소추 사유를 내란죄 등 ‘형법 위반’과 계엄 선포 요건을 어기고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등의 ‘헌법 위반’으로 구분해 구성했는데, “헌법재판이 형법 위반 여부에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정청래 국회 탄핵소추단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대통령 탄핵 심판 2차 변론준비기일에 참석해 국회 측 소추 대리인단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측 주장은 형사 재판 중인 내란 혐의를 다투지 않고 계엄 선포의 위헌성 부분에만 집중해 심리를 빨리 끝내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 측은 “야당은 탄핵안을 접수하면서 내란죄를 적시했다.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라며 “지금 와서 빼놓으면 결과적으로 탄핵소추 사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 측은 “윤 대통령에게 내란죄가 성립될 여지가 없으므로 청구인이 내란죄 주장을 철회하려는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에 국회 측은 “내란죄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라며 “내란죄 유무죄 판단은 형사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고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이다. 절차에 맞춰서 입증하고 다툴 것이란 얘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변론준비기일의 목적인 쟁점 정리 및 증거·증인 채택과 관련해선 국회 측 의견이 다수 받아들여졌다. 헌재는 검찰ㆍ경찰ㆍ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의 수사 기록을 확보해 달라는 국회 측 요청(인증등본 송부 촉탁)을 채택했다. 아울러 국회 회의록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수사 자료와 관련해 윤 대통령 측은 ‘재판·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은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헌재법 32조)는 규정을 근거로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헌재는 “수사 기록은 이 사건 소추 사유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심리에 필요한 자료로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32조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