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로컬라이저 설계社 연락 안돼...둔덕 규명 시간 걸릴 듯”

 [이슈분석]

경찰 과학수사대가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와 콘크리트 상판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과학수사대가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와 콘크리트 상판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서 사고 원인과는 별개로 대규모 인명피해를 야기한 장본인으로 ‘로컬라이저(방위각 제공시설) 둔덕’이 꼽히고 있다. 

 겉엔 흙이 덮였지만 내부엔 2m 높이의 콘크리트 기둥들이 있고, 30㎝ 두께의 콘크리트 상판이 얹혀진 둔덕만 없었다면 동체착륙한 여객기가 산산이 부서지고, 화재까지 발생해 탑승객 대부분이 숨지는 참사는 없었을 거란 주장이다. 

 여기엔 둔덕 바로 뒤에 시멘트벽돌로 된 외벽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얇아 이곳에 충돌했다면 피해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담겨있는 게 사실이다. 

 사고 이후 지금까지 제기된 로컬라이저 둔덕 논란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규정상 로컬라이저의 위치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unway end safety area)’ 안이냐 밖이냐 하는 것이다. 

 국토부의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항공기가 착륙 후 제때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부분을 지나쳤을 경우 항공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착륙대 종단 이후에 설정된 구역을 말한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최대한 장애물 없이 비어 둬야 하는 지역인 셈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착륙대(길이 60m)의 끝에서 최소 90m 이상 되어야 하며, 무안공항은 199m로 설정하고 있다. 

무안공항 사고 현장에서 동체의 꼬리날개 부분 인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무안공항 사고 현장에서 동체의 꼬리날개 부분 인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종단안전구역 안에 있는 시설물은 설치 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된다. 해당 기준 제22조에는 ‘항행에 사용되는 장비 및 시설로 반드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설치되어야 하는 물체는 항공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하며 최소 중량 및 높이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토부의 ‘공항안전운영기준’ 제42조에도 ‘(착륙대, 유도로대 및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불법 장애물이 없을 것. 다만, 설치가 허가된 물체에 대하여는 지지하는 기초구조물이 지반보다 7.5㎝ 이상 높지 않아야 하며, 물체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고 제시돼 있다. 

 이들 국내 규정은 대부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와 미국 연방항공청(FAA, 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의 규정을 준용해 마련됐다고 한다.  

 로컬라이저가 규정상 종단안전구역 내에 위치해야 하는 시설물이라면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둔덕은 재질과 높이 등등에서 모두 안전규정을 위반한 것이 명백해진다. 그러나 종단안전구역 밖이 맞는 위치라면 적용할 안전규정이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현재 국토부는 로컬라이저의 규정상 위치는 종단안전구역 밖이 맞는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둔덕은 활주로 끝에서 264m 지점에 있다. 수치대로 보면 종단안전구역(259m)에서 5m 뒤에 있는 것이다. 참고로 ICAO 권고는 활주로 끝에서 300m다. 

 일부에선 공항ㆍ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의 제21조 4항 ‘정밀접근활주로의 경우에는 방위각제공시설(LLZ)이 설치되는 지점까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하여야 하며….’란 규정을 들어 정밀접근활주로를 운영하는 무안공항의 경우 로컬라이저도 종단안전구역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왼쪽) 등 국토부 항공실 관계자들이 사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왼쪽) 등 국토부 항공실 관계자들이 사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해당 조항에 있는 ‘까지’는 영문 상 ‘포함(including)’이 아니라 ‘그 앞까지(up to)’란 의미”라며 “FAA도 관련 규정에서 로컬라이저는 종단안전구역 ‘너머(beyond)’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토부도 두 번째 논란인 콘크리트 둔덕의 적절성에 대해선 할 말이 옹색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관련 규정상 적용할 안전규정이 마땅치 않았다고 해도, 애초 2007년 개항 당시부터 활주로 연장 선상에 2m 높이의 콘크리트 기둥들이 여럿 세워진 둔덕을 만든 게 항공안전 측면에서 적절했느냐 하는 지적엔 답변이 어려운 것이다.

 해외 전문가는 물론 공동조사를 위해 방한한 미국 항공안전 관계자들도 해당 둔덕을 보고는 그 위험성에 상당히 놀라움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토부 안팎에서도 “로컬라이저 둔덕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엔 이견이 있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무안공항은 개항 당시부터 콘크리트 기둥을 지지대로 넣고 그 위에 로컬라이저를 세운 둔덕이 있었고, 2023년께 노후화된 시설을 개량한다는 명목으로 둔덕 위에 30㎝ 두께의 콘크리트 상판을 더 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상판 보강이 피해를 더 키웠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초부터 왜 콘크리트 지지대를 지하에 넣지 않고 지상으로 올렸는지 그 이유를 확인해야 정확한 진상 규명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한미합동조사 관계자들이 사고 여객기와 충돌로 부서진 로컬라이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한미합동조사 관계자들이 사고 여객기와 충돌로 부서진 로컬라이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익명을 요구한 공항업계 관계자도 “보강공사를 담당한 곳은 이미 있던 둔덕에 대해 그동안 논란이 없었고, 이렇다 할 안전규정도 없으니 별 고려 없이 그 위에 콘크리트 상판을 얹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무안공항 건설 당시 로컬라이저 설계는 A 통신이 맡았다. 당시 발주처는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산하 서울지방항공청(서항청) 이었으며, 공항 건설 전체는 금호건설이 담당했다. 

 설계 당시 상황과 이유를 파악하려면 A 통신이 일단 키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수소문하고 있으나 A 통신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미 폐업을 했다는 얘기도 있어서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A 통신의 홈페이지도 폐쇄돼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설계 관련 협의 및 승인을 담당한 서항청과 금호건설을 통해 당시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20여년 된 상황이라 서항청에는 당시 설계도면 등만 남아있고, 금호건설 역시 오래전 사업이라 경위 파악에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이라고 전해진다.

 이번 참사의 원인과 피해 확대 요인 등을 명확히 밝혀서 퍼즐을 맞추려면 결국 최초 로컬라이저 설계의 이유와 과정부터 확인해야 한다. 국토부에 이어 사법당국의 수사까지 이를 찾아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