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극우파를 노골적으로 지지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갈수록 간섭 수위를 높이며 유럽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 실세로 떠오르면서 일부 유럽 정상은 그에게 구애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5일(현지시간)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와 관련해 X에 올린 글. 사진 X 캡처
5일(현지시간)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영국)개혁당은 새 대표가 필요하다. 나이젤 패라지 (대표)는 그만한 자질이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이는 그간 머스크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다. 머스크는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와 지난달 17일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사진을 함께 찍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당시 만남 이후 “머스크가 나이젤에 최대 1억 달러(약 1437억원) 기부를 약속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머스크와 패라지가 갈라진 원인은 영국 극우 운동가 토미 로빈슨의 석방을 둘러싼 이견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로빈슨은 영국 극우단체 ‘영국수호리그(EDL)’를 설립한 반이슬람 활동가로 시리아 난민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10월부터 수감 중이다.
5일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 2일 X에 “로빈슨을 석방하라”며 그를 옹호하는 글을 잇달아 게시했다. 하지만 이튿날 패라지는 “로빈슨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로이터=연합뉴스
패라지는 5일 자신에 관한 머스크의 비방글에 대해서도 “로빈슨이 개혁당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 견해는 여전하고 나는 내 원칙을 팔아넘기지 않는다”며 맞받았다. 텔레그래프는 “머스크와 패라지의 분열은 피할 수 없고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패라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로빈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패라지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유럽 정치에 대한 머스크의 간여는 이뿐만 아니다. 이날 머스크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에 대해서도 “스타머는 사임해야 한다. 국가적 수치”라고 저격했다.
머스크는 다음달 23일 총선을 앞둔 독일과 관련해서도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에 앞서 머스크는 집권 사민당(SPD) 소속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향해선 “반민주적 폭군”이라고 비난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 대해선 “무능한 멍청이”라고 깎아내린 바 있다.
지난 2023년 10월 이탈리아 총리 관저에서 만난 일론 머스크와 조르자 멜로니 총리. 사진 테슬라티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머스크의 태도에 유럽 정치권 내 다수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일부 정상은 머스크를 적극 지지하며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 3일 현지 매체에 “(머스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하는 특별한 혁신가”라고 추켜세웠다. 곧바로 이튿날 멜로니 총리가 트럼프를 만난 뒤엔 "이탈리아 정부가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와 15억 유로(약 2조3000억) 규모의 ‘보안 통신망’ 계약을 추진 중"(블룸버그통신)이란 보도도 나왔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