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임 당한 유럽의 ‘쌍두마차’
당장 세계 3대 경제권이자 민주주의 역사의 교과서와도 같은 유럽연합(EU)의 리더, 프랑스와 독일의 상황만 봐도 풍전등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총선에서 극우로 분류되는 국민연합(RN)을 견제하기 위해 극좌가 주도하는 신민중전선(NFP)과 손을 잡았다. 중도파가 우파보단 좌파와 연합하는 프랑스 정치 전통에 따른 것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당에 올라선 NFP는 마크롱과 파워게임을 벌이다, 완전히 반대편인 RN의 손을 잡고 미셸 바르니에 내각을 붕괴시켰다. 겉으론 바르니에 내각의 증세 및 긴축 예산 처리 시도를 문제 삼았지만, 진짜 목표는 마크롱이 옹립한 내각을 무너뜨리는 데 있었다. 1당으로서 총리 지명권을 행사하겠단 것이었다. NFP는 내친김에 마크롱에게 하야도 요구하고 있다.
독일도 올라프 숄츠 총리에 대한 연방의회의 불신임으로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독일 연정 역시 표면적으로는 프랑스와 동일한 예산 문제로 붕괴했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출신인 숄츠 총리는 확장 재정 정책을 시도했지만, 건전 재정을 주장하던 연정 파트너 자유민주당(FDP)과 마찰을 빚고 결국 불신임 당했다.
프랑스와 독일 모두 내각 불신임 과정에서 우파가 적극적인 모양새를 보였다. 프랑스에선 좌파 NFP가 반마크롱 노선을 보이자 키를 쥐고 있던 우파 RN이 가세하고, 독일에선 우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사민당의 연정 제안을 뿌리쳐 내각 붕괴로 몰아갔다.
독일의 경우 사민당이 대마초 합법화, 성별자기결정법 등 사회개조 수준의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노동자‧저소득층‧여성단체 등의 반감을 산 점도 작용했다.
이와 관련,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은 “유럽에선 극좌와 극우의 극단주의가 두드러지는데, 특히 극우파의 부상이 눈에 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피로감 누적 등의 요인도 있지만, 이민자 유입에 따른 치안 불안 및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 등 국내적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 다양성’ 내세우다 정권 붕괴
하지만 한 해 1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인 결과, 물가와 주거비가 급등했고 여론이 악화하면서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설상가상 트럼프로부터 “캐나다인들은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조롱까지 듣지만, 이같은 캐나다 내부의 정치 리더십 문제로 제대로 된 항의도 못하는 실정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스스로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정가에선 스타머에 대해 “쓸 데 없이 세세하게 관리하려 든다(micromanaging)”, “의사결정이 너무 느리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은 주요 결정을 집권 자민당 2인자인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간사장이 내리는 등 ‘이시바 총리 패싱’이 일어나고 있다.
G7 주요국 정권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치적 중도파의 쇠퇴와 포퓰리즘의 등장, 고령화와 금융위기 등에 따른 재정적 압박으로 G7에서 안정적인 정부를 유지하게 어렵게 됐다”고 그 원인을 짚었다.
이와 관련, 조반니 오르시나 로마 루이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CNN과 인터뷰에서 “독일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그리고 프랑스의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탈리아는 안정적인 정부를 가진 유일한 국가로서 트럼프에 대해 일종의 독점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