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국제금융ㆍ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자금은 38억6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순유출은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온 자금보다 많았다는 뜻이다. 월별로 따졌을 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3월(-73억7000만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달 말 달러당 원화값(1472.5원)을 기준으로 하면 약 5조6839억원 규모에 달한다.
12월 외국인 주식자금은 25억8000만 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같은 해 8월부터 5개월 연속 돈이 빠져나갔다. 국내 반도체 기업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우려 등이 더해진 영향이다.
외국인 채권자금도 12억8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지난해 11월 8억1000만 달러 순유입에서 12월 순유출로 전환됐다. 한은은 “연말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가 둔화한 가운데 국고채 만기 상환, 낮은 차익 거래 유인 지속 등으로 채권자금도 순유출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미루고 있다. 12월엔 기업 대출도 이례적으로 크게 감소했는데 특히 시설자금 수요 등이 줄어든 게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1315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11월보다 11조5000억원 감소했다. 조선업 장기 불황이 이어지던 2016년 12월 15조1000억원 감소 이후 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연말 효과’도 작용했다. 은행이 기업대출 목표량을 일찍 달성했거나, 연간 자본비율 충족을 위해 위험 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 취급을 줄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재무비율 관리 차원에서 대출을 일시적으로 상환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감소 폭은 2023년 12월(-5조9000억원), 2022년 12월(-9조4000억원)보다 훨씬 컸다. 지난해 4분기 전체로도 기업 대출이 1조2000억원 줄었는데 이 역시 2016년 4분기(-8조3000억원) 이후 첫 감소다. 박민철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수요 측면에서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증대로 기업들이 투자를 유보하면서 시설자금 등 수요가 줄었다”며 “공급 측면에서는 은행들이 기업대출 목표치를 일찍 달성하면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가계대출도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141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4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3월(-1조7000억원) 이후 9개월 만에 첫 감소다. 주택 거래가 줄고,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따라 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인 영향이다. 2금융권까지 포함한 전 금융권 가계대출도 지난달 2조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8월 증가액(9조7000억원)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