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내용을 담은 내란 특검법안이 17일 심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지난 9일 발의한 원안에서 논란이 됐던 외환 혐의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수사 대상에서 뺀 수정안이 상정되면서다. 다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 실제 특검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특검법은 이날 밤 11시 20분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 274명 중 찬성 188명, 반대 86명으로 가결됐다.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지만, 안철수 의원만 유일하게 찬성을 눌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표결에 앞서 “이번 사태의 독립적 수사를 위한 특검 임명은 꼭 필요하고 긴급하다”며 “위헌적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두고 언제까지 줄다리기를 반복할 수는 없다. 아쉬움이 있더라도 하나씩 매듭짓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본회의 뒤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기들 마음대로 (법안을) 수정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강행 처리했다”며 “외환죄로 특검 발의하고, 본회의에서 삭제했다. 나라를 호떡 뒤집듯 바꾸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날 특검법이 처리되기까지 여야는 지난한 협상 과정을 거쳤다. 권 원내대표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 의장 주재로 오후 1시30분 첫 회동을 시작했다. 두 원내대표는 오후 9시 넘어서까지 특검법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다. 좀처럼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평행선을 달린 부분은 수사 대상이었다. 민주당 등 야당이 발의안 특검법안의 수사 대상 중에서 외환 혐의 등을 삭제해야 한다고 국민의힘은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 결렬 선언 뒤 민주당이 수정안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외환 혐의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수사 대상에서 삭제했다. 국민의힘이 요구했던 부분이다. 또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수사 대상으로 포함될 수도 있는 조항(계엄 해제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표결과 출입을 방해한 혐의)도 지웠다. 그래서 수정안의 수사 대상은 ▶국회 점거 ▶선관위 점거 ▶정치인 등 체포·구금 ▶무기동원, 상해·손괴 ▶비상계엄 모의 ▶관련 인지사건이 됐다.
전체적으로 수사 대상이 11개 조항에서 6개 조항으로 줄었는데, 그중 5개가 국민의힘이 이날 자체 발의안 법안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수사 도중 인지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가능하게 한 것만 국민의힘 안에 없던 내용이었다. 수사 기간(130일→100일)과 파견 검사 숫자(30인→25인)도 줄여 국민의힘 의견을 수용했다. 박 원내대표는 “특검을 마냥 미룰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이 제기하던 법안의 문제점이 모두 해소된 건 아니었다. 대법원에서도 비판이 나왔던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 군 시설, 대통령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가능한 조항은 그대로 살려뒀다. 국민의힘은 ‘관련 인지사건’이 수사 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 “별건 수사가 가능하다”며 문제가 크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별건 수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키”라고 했다.
내란 특검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달 12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함께 내란 특검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최상목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은 국회로 돌아왔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했으나 부결돼 폐기되자 민주당은 이튿날인 지난 9일 곧바로 내란 특검법 수정안을 발의했다.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이번에는 재표결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8일 재표결 때는 여당에서 6명이 찬성표를 던져 단 2표 차이로 부결됐었다. 이번 수정안엔 국민의힘이 그동안 핵심 문제로 지적하던 외환 혐의와 내란 선전·선동 혐의가 빠진 만큼 재표결에서 국민의힘 이탈표가 더 발생해 가결될 수 있다고 민주당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