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권금성 산장'의 털보 산장지기로 유명한 산악인 유창서씨가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은 16일 오후 5시쯤 강원도 속초 자택에서 유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17일 밝혔다.
고인은 1938년 10월 30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54년 배재중에 다닐 때 암벽 등반에 입문했고, 동국대에 들어가 산악부 초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1963년 도봉산 선인봉 측면 등반에 성공했으며, 1969년 설악산 토왕성폭포 첫 등반을 시도했다.
1969년 2월 한국산악회의 '설악산 죽음의 계곡 10동지 조난사고' 수습에 나선 걸 계기로 같은 해 가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1971년 1월 15일부터 2009년까지 38년 5개월간 설악산 화채능선(대청봉에서 시작해 화채봉 등의 봉우리를 지나 권금성까지를 잇는 능선) 끝쪽에 권금성산장을 운영했다. 불법 산행을 조장하지 않겠다며 숙박은 거부하고 최소한의 음료와 물품만 팔았다.
1973년 산장에 찾아온 황국자씨와 결혼해 아들(유석준)을 뒀다. 1976년 대한적십자사 설악산 산악구조대를 창설해 초대 대장을 지내면서 수많은 인명을 구조했다. 1983년 2월 무렵 보도에 따르면 이때까지 구조한 사람만 440여명에 이르렀다.
대한산악연맹이 매년 여름과 겨울에 개최한 '설악산 등산학교'의 교관으로도 활동했다. 한때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에델바이스 서식처 5곳을 찾아냈고 크낙새와 산양 등의 서식 실태도 알아냈다. 1994∼1998년 한국산악동지회 2대 회장을 지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03년 화채능선을 법정 탐방로에서 제외하면서 산장 철거를 통보하자 2008년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후 2009년 산장 문을 닫고 속초에서 살았다. 2015년 국립산악박물관이 '권금성 털보 산장지기 산악인 유창서의 설악에 살다' 토크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산장을 찾은 이들이 남겨놓은 메모의 사연을 묶어서 책 『바람이여 구름이여 설악이여』(1990), 산장에 남긴 사연들』(1992)을 펴냈다. 1981년 권금성산장을 기반으로 수많은 인명을 구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빈소는 속초의료원 3층 특실, 발인은 18일 오전 6시, 장지는 천주교성모동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