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전업주부 23만명 22년 만에 최다…여성은 오히려 준 까닭

남성 전업주부 강기웅(34)씨와 아내, 세 자녀. 중앙포토

남성 전업주부 강기웅(34)씨와 아내, 세 자녀. 중앙포토

서울 금천구에 사는 강기웅(34)씨는 전업주부(專業主夫)다.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 ‘며느리 부(婦)’가 아닌 ‘지아비 부(夫)’를 써야 할 것 같다. 강씨 부부는 원래 맞벌이를 했지만, 셋째 아이가 태어난 2023년부터 아내만 일터에 나간다. 맞벌이로는 도저히 세 아이를 돌보는 게 불가능했는데, 벌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강씨가 회사 일을 접고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그는 20일 중앙일보에 “가사·육아를 하는 데 힘센 남성이 여성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성 전업주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집안 살림은 여성이, 바깥일은 남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가사 혹은 육아 사유의 비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인구 중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 가운데 남성은 22만9000명에 달했다. 이는 2002년(35만명) 이후 22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해당 통계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30만명대를 나타내며 최고 수준을 보였다. 외환위기에 따라 실직한 남성 상당수가 전업주부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한 2003년 남성 전업주부 수는 10만6000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이후 남성 전업주부 수는 지난해까지 증가세를 나타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 통계에는 직장에 적을 두고 육아휴직 상태로 전업주부를 하는 남성들(경제활동인구)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까지 합하면 지난해 남성 전업주부 수는 22만9000명보다 더 불어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4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본다. 이들 중 일부가 남성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급격한 증가세를 나타낸다. 2016년(7616명)과 비교하면 5배 이상으로 늘었다.

반면 여성 전업주부(專業主婦) 수는 감소 흐름이다. 지난해 가사·육아 사유의 비경제활동인구 중 여성은 652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1.2% 감소했다. 2013년(732만2000명)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대신 일터로 향하는 여성들이 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2년(61.8%)부터 지난해(63.9%)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남성 전업주부가 늘고 여성 전업주부가 줄어드는 건 세계적인 ‘하우스 허즈번드’(house husband) 현상이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포착되기 시작했다. 핵가족화에 성평등주의가 더해지면서 일하는 여성이 증가했고, 남성보다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늘면서 남성 전업주부도 늘었다는 이야기다. 경기 침체에 따라 맞벌이 부부 가운데 남성이 실직해 비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한국의 하우스 허즈번드 현상을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해 가사·육아 사유의 비경제활동인구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39%에 불과하다. 또한 통계청 통계 기준의 남성 전업주부 수(22만9000명)를 연령대별로 구분해 보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핵심노동연령(25~54세)에 해당하는 숫자는 7만명가량으로 3분의 1토막이 난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55세 이상 고령층이라는 이야기다. 송준행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고령화에 따라 고령층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 영향”이라며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 혹은 은퇴 후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남성 노인 등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남성 전업주부 문현준(39)씨와 아내, 네 자녀들. 중앙포토

남성 전업주부 문현준(39)씨와 아내, 네 자녀들. 중앙포토

 
세계적인 하우스 허즈번드 바람 가운데 한국이 뒤처지는 이유는, 여전히 남성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네 아이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고 있는 남성 전업주부 문현준(39)씨는 “2016년 처음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을 많이 해 힘들었다”며 “그래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곳(성산동 성미산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됐는데, 평범한 주거 지역에 살았다면 전업주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진 총신대 아동학과 교수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기에 눈치가 보이는 문화, 여성의 평균 임금 수준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현상 등도 남성이 전업주부를 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전업주부를 하려는 남성들 앞에 놓인 걸림돌을 치우면 고질적인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라는 제안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010년대 중반부터 가임기 여성 상당수가 ‘일이냐 출산이냐’ 기로에서 일을 선택함에 따라 저출산이 심화한 것으로 보는데, 해당 여성들의 남편이 전업주부를 하려고 할 경우 길을 닦아주면 여성들이 일과 출산을 전부 잡으려고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남성 전업주부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맞벌이를 하든, 남성이 전업주부를 하든, 여성이 전업주부를 하든, 어떤 선택을 해도 일과 출산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 등을 통해 가정 내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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