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경찰청 공지에 따르면 전날 새벽 윤석열 대통령 구속에 반발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난동을 부려 체포된 90명 중 과반인 46명(51%)이 20대와 30대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남성이었다고 한다. 당시 서부지법 시위에 참석한 30대 남성 B씨는 중앙일보에 “비폭력을 해서 뭐하나. 우리가 그래서 대통령을 뺏긴 것”이라고 말했다.
과격 행동과는 별개로 보수 집회에 참석하는 20·30대 남성도 늘고 있다. 이달 초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았던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과거 태극기 집회는 고령층 위주였는데, 최근엔 젊은 층이 많이 보여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 집회 현장에는 ‘멸공봉’으로 불리는 경광봉을 들고 집회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문구인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추라)이 적힌 피켓을 든 20·30대가 적지 않다. 이달 초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김동현(34)씨는 “한덕수 총리 탄핵을 보고 집회 참석을 결심했다”며 “집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해 부채 의식이 있다”고 했다.
이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결집하는 통로는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이다. 디시인사이드의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에는 20·30대의 집회 참석 후기가 꾸준히 올라온다. 자신을 20대 후반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주변에 나 빼고 다 좌파라서, 왜 우파는 한 명도 없냐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세게 왔는데, 같은 편끼리 모여서 시위하니까 짜릿했다”고 썼다. 집회 참석자 게시글에는 “네가 애국자”, “멸공”, “40·50대 좌파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댓글이 달렸다.
구독자 18만 명의 보수 유튜브 채널 ‘학생의 소리 TV’는 윤 대통령을 ‘윤카’(윤석열+각하)라고 칭하며, 청년들의 집회 참석 라이브 영상을 게재한다. 구독자 71만 명의 유튜브 채널 ‘그라운드 C’에는 서부지법 난입 사태를 두고 “청년이 서부지법을 부순 게 아니라 서부지법이 청년의 마음을 부쉈다” 같은 댓글이 올라왔다. 일부 여당 의원이나 보좌진도 영상을 돌려본다고 한다. 여당 관계자는 “20·30대가 실시간으로 영상을 편집하거나 신속하게 이슈를 포착하는데 능하다 보니, 이들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지지율 상승을 이들이 견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여론조사 꽃’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주차 조사에서 20대 남성(국민의힘 29.5%, 더불어민주당 43.6%)과 30대 남성(국민의힘 18.7%, 민주당 54.1%)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낮았다. 하지만 탄핵 국면이 이어진 뒤 20일 발표된 1월 3주차 조사에서는 20대 남성(국민의힘 43.2%, 민주당 24.6%)과 30대 남성(국민의힘 38.9%, 민주당 35.2%)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급등했다.
20·30대 남성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반(反)페미니즘 정서를 토대로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공약이 열광했다. 그러나 대선 직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박탈’ 사건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미이행 논란 등으로 여권에 등을 돌렸지만 최근 들어 이런 흐름이 다시 바뀌는 국면인 셈이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계엄 사태로 윤 대통령이 몰락하면서 무게 추가 급격히 야권으로 기울자 반페미니즘, 반중국 정서 등이 강한 20·30대 남성의 위기 의식이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카톡 검열’ 논란이 반이재명 정서를 촉발시키는 촉매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0일 전용기 민주당 의원이 “카카오톡 등을 통해서 가짜뉴스를 단순히 퍼 나르는 일반인이어도 내란 선전으로 고발하겠다”고 말한 게 발화점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등에는 이에 반발해 “카톡 계엄령”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각종 검열과 규제에 민감한 20·30대 남성들의 정서를 카톡 검열 논란이 정면으로 건드렸다”고 분석했다.
거리로 나선 20·30대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국민의힘 다선 의원은 “20·30대 남성의 집단 반발이 민주당의 폭주를 상당 부분 잠재웠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부지법 난입 사태처럼 일부 청년층이 극단주의나 폭력에 경도돼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건 정치 퇴행”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