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하다더니 "준 적 없다"는 尹…'최상목 쪽지' 실체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헌법재판소에서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지시가 담긴 이른바 ‘최상목 쪽지’를 준 적이 없다며 부인하면서 사본까지 공개된 문건의 실체 논란이 이어지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탄핵심판 3차 변론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저는 이걸 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비상계엄 해제 후에 한참 있다가 언론에서 이런 메모가 나왔다고 한 기사를 봤다”고 했다.

전날 MBC는 윤 대통령이 지난달 3일 계엄 선포 직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에게 건넨 문건 실물의 사본이라며 A4용지 크기의 문서를 공개했다. ‘기획재정부장관’이란 제목의 문서에는 세 가지 지시 사항이 담겼다.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해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지원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히 차단할 것’,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다.

국수본 관계자는 이날 “사건을 송치·이첩하면 실물이 없어 사본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김용현 전 장관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사·재판 중 사안으로 동일한 쪽지인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건넸던 문건의 사본이라며 20일 MBC가 공개한 문서. MBC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건넸던 문건의 사본이라며 20일 MBC가 공개한 문서. MBC 캡처

비상입법기구는 12·3 비상계엄이 위헌적 국회 해산을 목적으로 했다는 핵심적인 증거로 꼽힌다. 국회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별도의 입법기구를 만들어 통치하려는 사전 준비로 해석될 수 있는 지시이기 때문이다. 야당에선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임시 입법기구로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 조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윤 대통령의 이날 변론에서 준 적 없다는 발언은 앞서 최상목 대행의 국회 답변이나 검찰 수사결과가 담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소장 내용과 차이가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18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도 쪽지를 직접 쓴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차은경 서부지법 부장판사가 5분간 최후 진술에 나선 윤 대통령에게 ‘비상입법기구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계엄 선포 이후에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묻자, 윤 대통령이 “(쪽지는) 김용현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답을 피하면서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김용현 전 국방장관(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이는 윤 대통령이 내란의 책임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내란죄는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형법 제87조)에게 적용된다. 헌법 기능을 강제로 소멸시키거나,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전 장관 측은 “메모 작성자는 김 전 장관”이라는 입장이다. 전날 변호인단이 낸 언론 공지에서 “(김 전 장관은) 국회가 행정예산을 완전히 삭감하면서 마비된 국정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긴급 명령 및 긴급재정입법 권한(헌법 76조 1항)’ 행사를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이를 대통령이 기재부 장관에게 검토하라고 준 것”이라며 “국회 대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