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마치려하자, 尹 "잠시만요"…마지막 말은 "국회가 초갑(甲)"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번호 10번’ 대신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섰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50 일만, 지난 15일 체포영장 집행 직전 대국민담화 영상 이후 약 6일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대통령 탄핵심판은 세 차례 있었지만, 피청구인인 대통령 본인이 직접 헌재에 출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리인만 출석해 변론을 진행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남색 양복에 붉은색 타이를 매고, 평소와 같은 2대 8 가르마를 곱게 빗은 머리로 오후 1시 58분 헌재 대심판정에 등장했다. 과거 대통령 직무 수행 당시보다 다소 체중이 준 듯했으나 표정은 밝았다. 조대현 변호사를 비롯한 대리인단과 웃으며 인사한 뒤 자리에 앉은 윤 대통령은 심판정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관찰하기도 했다. 재판관들이 들어온 뒤 꾸벅 인사를 했고, 본인 확인을 할 때는 작게 대답하며 일어나서 답하려는 듯 몸을 들썩이기도 했다.

 

尹 4번 직접 발언… “업무 과중한데 송구”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피청구인석에서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피청구인석에서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오후 2시 시작된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3차 변론은 오후 3시 43분 끝났다. 1시간 43분간의 변론시간 중 윤 대통령은 총 4차례 발언 기회를 얻어 6분 30초간 직접 발언했다.  


변론이 시작된 직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이 희망하신다면 발언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밝히자, 윤 대통령은 “여러가지 헌법소송으로 업무도 과중하신데 저의 탄핵사건으로 고생하시게 해서 재판관님들께 송구스런 마음”이라면서도 “저는 철 들고 난 이후 공직생활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고, 헌재도 이런 헌법 수호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만큼 재판관님들께서 여러모로 잘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리겠다”고 밝혔다.

 

오후 3시 28분경 문형배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신문으로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란 쪽지를 기재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는지’ 묻자 윤 대통령은 손에 펜을 쥔 채 자세를 앞으로 고쳐 앉아 “저는 준 적도 없고, 언론에서 나중에 봤지만 기사 내용도 부정확한 데다 (김용현)국방부 장관이 당시 구속돼있어서 확인을 못 했으며 내용도 모순된다”며 약 1분간 답변을 했다. 답변하면서는 문 권한대행과 방청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재판이 끝나갈 무렵 국회 측에서 “앞으로 증인들은 피청구인이 앞으로 계속 출석한다면 면전에서는 진술이 어려울 것 같아서 피청구인을 퇴정시키거나, 적어도 눈이 마주치지 않게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자 윤 대통령은 재차 발언 기회를 얻어 또 약 1분간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직무 정지된 상태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이 사건 내용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피청구인인 대통령 저 자신”이라며 “저 주장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면서 앞서 대리인단의 ‘부정선거 의혹’ 관련 변론에 대해서도 약 2분간 길게 첨언했다. 

 

尹 “대통령보다 국회·언론이‘초 갑(甲)”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당시 국회의장 공관으로 출동한 군인들이 포착된 공관 폐쇄회로(CC)TV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당시 국회의장 공관으로 출동한 군인들이 포착된 공관 폐쇄회로(CC)TV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오후 3시 40분쯤 문형배 재판관이 증거 채부 관련 일정을 설명한 뒤 “이상으로…”라며 재판을 마치려고 하자, 윤 대통령은 “잠시만요”라며 재차 발언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앞서 국회 측에서 증거조사를 위해 재생했던 국회 및 선거관리위원회 CCTV 영상에 대해 “짧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군인들이 본 청사에 진입을 했는데 직원들이 저항을 하니까 더 들어갈 수 있는데도 스스로 나가지 않냐, 이 점을 좀…”이라며 “국회 의결을 방해했다고 하는데 설령 군을 투입해 방해했더라도 그 이후 더이상 계엄해제 요구를 못 하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보다 더 강한 ‘초 갑(甲)’”이라며 “이후에도 얼마든지 계엄해제요구를 할 수 있고, 그것을 막았다면 그건 정말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엄해제의결 직후 저는 방송으로 그걸 보고 바로 군을 철수시켰고, 국회의장 공관에 군인이 체포할 것처럼 찾아갔단 영상은 아마 퇴각하는 과정일 것”이라며 “계엄해제요구 결의를 막거나, 연기시켰다고 해서 막아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밝혔다.

 

 

구치소→헌재→병원→구치소… 오후 9시경 복귀

 
지난 19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중인 윤 대통령은 오후 12시 48분 법무부 차량을 타고 구치소를 출발해 오후 1시 11분쯤 헌법재판소에 도착했다. 지난 1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서부지법에 출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이 탄 법무부 호송차 앞뒤로 경호처 차량이 따라붙었고, 서울구치소에서부터 헌법재판소까지 신호를 통제해 멈추지 않고 헌재로 직행할 수 있도록 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량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군서울지구병원 후문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 후 오후 4시 42분께 헌법재판소를 떠나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이동했다. 이후 호송차는 오후 8시 41분 국군서울지구병원을 빠져나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량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군서울지구병원 후문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 후 오후 4시 42분께 헌법재판소를 떠나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이동했다. 이후 호송차는 오후 8시 41분 국군서울지구병원을 빠져나갔다. 연합뉴스


현직 대통령 신분이라 경호처와 헌재가 조율한 끝에 윤 대통령은 평소 재판 당사자들이 출입하는 외부 출입문 대신 지하주차장을 통해 헌재 본관 건물로 바로 들어갔다.심판정에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함께 들어와 윤 대통령 지근거리에 앉았다. 보안을 위해 일반방청석 20석은 온라인 추첨으로만 선정했다. 헌재 내부에서도 주차장 내 윤 대통령의 동선을 볼 수 없게 취재진이 위치한 헌법도서관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통로의 유리벽도 병풍으로 막았다가 나중엔 흰색 불투명 테이프를 발라 시야를 차단했다.

초유의 현직 대통령의 헌재 출석에 다수 외신과 국내언론 등 약 400명의 취재진이 헌재에 몰려, 평소 쓰던 브리핑룸 외에 별도의 대강당을 열었다. 안국역 사거리에도 약 2500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지만, 오전 11시 30분부터 헌법재판소 인근은 대통령 경호구역으로 지정돼 헌재 앞 도로 전체에 경찰 버스로 차벽을 치고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변론이 끝나고 약 1시간 뒤인 오후 4시 43분 헌재를 빠져나간 윤 대통령의 호송차량은 구치소로 직행하지 않고 인근에 위치한 국군지구병원에 들렀다. 진료가 끝난 뒤 오후 9시 9분경 서울구치소에 복귀하며 약 8시간 21분간의 외출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