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 개헌 이끈 ‘8인 정치회담’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라는 대전제가 공유돼 있었지만 남은 쟁점은 많았다. 헌법 전문에 ‘국민 저항권’, ‘군의 정치 개입 금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 등을 포함할 것인가부터 대통령 임기, 부통령제 신설,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국회의 국무총리 불신임권, 선거 연령 인하 등 양당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6년 단임” vs “4년 중임” 공전 끝낸 실마리는
8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 연내 대선을 위해선 8월말까지는 개헌안에 합의해야만 했다. 권익현 민정당 의원은 회담 시작에 앞서 “당리당략을 떠나 야당할 각오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회의했고, 막판에는 주말에도 회의를 계속했다. 국회사무처가 제공한 양당 개헌 시안의 대비표를 앞에 두고 양당은 이견만 추출해 100여개의 쟁점을 집중 논의했다. 합의 정도를 ①합의 도달 ②의견 접근 ③전향적 검토 ④계속 검토로 표시해 이견이 큰 쟁점은 일단 넘긴 뒤 다시 논의하는 식으로 속도를 높였다.
산통이 가장 심했던 건 대통령 임기 문제였다. 민정당은 6년 단임제를, 민주당은 4년 중임제를 주장했다. 그사이 야권에선 대통령 후보 단일화 문제로 계파 간 갈등이 첨예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4년 중임은 당론으로 확고하며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확정된 당론이 아니다. 직선제는 합의됐으니 사소한 문제에 구애될 것 없다”고 맞선 상황이었다.
그러던 8월 12일 YS는 DJ 측과 상의 없이 기자들에게 “장기 집권은 막아야 하니 6년은 너무 길고 5년 단임 정도면 조정이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여론을 움직였다. 이 틈에 민정당은 “5년 단임이라도 수용하라”고 압박했고, 결국 DJ도 4년 중임제 주장을 포기했다. 8인 회담은 8월 30일 18차 회의에서 5년 단임제 합의를 이뤘고, 다음날 19차 회의에서 보안처분 요건 등을 조정한 최종 합의안이 나왔다.
이용희 전 민주당 의원은 “회담 구성원들이 여야 중진들이어서 서로 정치적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어 회의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2013년 국회보)고 회고했다. 이한동 전 민정당 의원은 “YS·DJ나 우리 당 노태우 대표나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그런지 세세한 걸 갖고 다투지 말고 빨리빨리 끝내라더라”(2017년 SBS)고 회상했다.
준비 끝낸 우원식…2월 개헌 논의 불붙나
정 위원장은 통화에서 “아직 어느 안이 우세하다고 할 수는 없다”며 “국민 정서가 대통령제를 떠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해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4년 중임제, 선거제 개편 등 여러 요소를 조합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