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정은 러 파병에 뿔난 中, '북송사무소'까지 꾸렸다

지난해 8월 16일 오전 북한 신의주를 출발한 버스 2대가 압록강 철교(중국 명칭은 중조우의교)를 통해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6일 오전 북한 신의주를 출발한 버스 2대가 압록강 철교(중국 명칭은 중조우의교)를 통해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장에 투입되는 등 전쟁에 대한 직접 관여도가 높아지면서 중국도 북한 노동자 단속 등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21일 파악됐다. 중국 당국이 북한 국적자에 대한 장기체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가운데 접경지역에는 무비자 북한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북송사무소'까지 설치했다.

이날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북·중 간 최대 교역 거점인 랴오닝성 단둥 지역에 '북송사무소'를 만들었다. 합법적인 비자가 없거나 기존 비자가 만료된 북한 노동자 등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신속하게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게 사무소 설치 목적이다. 

한 소식통은 또 "최근 중국 정부에서 북한인 상주 인원을 신규로 파견하는 것 자체를 불허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한과 수백명 단위의 노동자 파견 계약을 마친 중국 업체들이 노동자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 북한 무역대표부도 신규 간부를 파견받을 수 없어서 기존 인력을 본국으로 돌려보낸 뒤 후임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단속의 수위는 인력 파견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중국에 체류 중인 북한 국적자의 영업 행위를 제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최근 중국은 자국 내 모든 지역에서 북한 국적자의 회사(법인) 등록을 불허하고 있으며, 기존 회사는 은행 계좌를 동결했다. 이에 북한 당국과 무역회사들은 일부 사업체를 러시아로 이동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2022년 1월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시 단둥역 철로에 북중 교역에 이용되는 화물열차가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22년 1월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시 단둥역 철로에 북중 교역에 이용되는 화물열차가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중국은 세관을 통한 대북 밀수 단속도 한층 강화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세관들은 지난해 11월 이후 북한으로 반출되는 물자를 대폭 제한하고, 높은 관세도 적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중국에 머물던 북한 상주 대표가 자국으로 복귀하면서 전자제품을 평균 5개까지 반입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물품 검사가 강화되면서 개인 물품의 반입 자체가 대부분 중단됐다고 한다.


특히 단둥 세관은 '북한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이삿짐에서 대북제재 물자가 계속 적발된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말 이후 이삿짐의 통관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현지에선 접경 지역에서 중국 세관의 단속이 심해지자 항공편을 이용한 귀국 수요가 증가했고, 북한 당국이 조만간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을 증편할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다. 

이런 단속 강화로 기존의 밀수 루트도 직격탄을 맞는 분위기다. 소식통은 "북·중 간 내륙 교역 거점인 창바이-혜산 및 린장-중강 일대에서 대북 밀수업자들이 잇달아 체포되는 등 단속이 심해졌다"며 "창바이와 린장에는 밀수 차량이 일감이 없어 도로 곳곳에 주차돼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지난해 운영했던 '조중(북중) 친선의 해 2024' 코너(왼쪽 붉은 네모)가 사라진 것으로 지난 3일 확인됐다. 중앙통신 홈페이지에는 이제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조로(북러)친선관계' 코너(오른쪽 붉은 네모)만 남게 됐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지난해 운영했던 '조중(북중) 친선의 해 2024' 코너(왼쪽 붉은 네모)가 사라진 것으로 지난 3일 확인됐다. 중앙통신 홈페이지에는 이제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조로(북러)친선관계' 코너(오른쪽 붉은 네모)만 남게 됐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이처럼 중국이 이전과 달리 제재 회피 등 북한의 불법 행위를 묵인하지 않는 '합법적 압박'을 강화하자 북한도 반발하는 분위기다. 최근 평양에선 젊은 여성들이 한국풍뿐만 아니라 중국풍의 헤어 스타일을 하는 것까지 단속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파견된 북한 '무역 일꾼'들 사이에서도 "중국이 러시아에 파병한 김정은을 길들인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실제 북·중 간 균열 징후는 공개적으로도 포착된다. 지난해 75주년을 맞았던 '북·중 친선의 해'는 폐막식조차 열지 못한 채 용두사미 식으로 막을 내렸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인터넷 사이트에 걸려있던 '조중친선의 해' 특집페이지로 연결되던 기념 배너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조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조러 친선관계' 배너로 교체됐다.

중국 해관총서가 지난 18일 발표한 2024년 북·중 교역액이 전년도(22억 9500만 달러·약 3조 2022억원)보다 5% 가까이 줄어든 21억 8000만 달러(약 3조 1368억원)를 기록한 것도 중국의 대북 거리두기가 양국 간 물자 교류에 영향을 끼쳤다는 방증일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안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중국의 위기감이 반영된 움직임"이라며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가 크게 축소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