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현대건설은 지난해 영업손실이 1조2209억원으로, 전년(영업이익 7854억원)과 비교해 적자 전환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현대건설이 연간 기준으로 적자를 나타낸 건 2021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때 영업손실(3828억원)을 낸 후 23년 만이다. 실적 발표 전 증권사들의 영업이익 전망 평균치(컨센서스)는 5448억원이었으나 시장 예상을 비껴가며 어닝 쇼크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0.3% 증가한 32조6944억원, 순손실은 7364억원이었다.
현대건설은 “고환율 및 원자재가 상승 기조, 연결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해외 프로젝트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비용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2019~2020년 인도네시아에서 연이어 수주한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와, 2021년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 수주한 사우디 자푸라 가스플랜트 사업에서는 1조원대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사업을 시작할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날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신용등급 전망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내렸다. 한기평은 “작년 4분기 해외 플랜트 손실이 반영돼 부채비율이 작년 9월 114.8%에서 12월 말 243.8%로 올랐다. 사업 및 재무안정성 회복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인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맏형 격인 현대건설의 실적 부진에 더해 올해 업황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에서 건설사의 실적 하락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삼성물산도 지난해 건설부문 영업이익이 1조1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 줄었다. 뒤이어 실적 발표를 앞둔 다른 건설사들도 줄줄이 실적 부진이 전망된다. 내달 초 실적 발표를 앞둔 대우건설의 작년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3458억원(지난 20일 기준)으로, 전년 대비 47.8% 감소한 수준이다. 당기순이익은 50.7% 줄어든 2571억원으로 예상된다. DL이앤씨의 작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전년 대비 19.27% 감소한 2669억원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업계 최상위권 회사가 이럴 정도면 다른 곳은 어떻겠느냐”며 “업황이 어렵다는 얘기는 매년 나오지만 최근에는 정말 어렵다. 내부에선 올해 전망을 더 안 좋게 본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재무 리스크도 심화하고 있다. 착공 물량이 줄면서 선수금이 감소하고 차입금은 늘고 있다. 공사를 해주고 받아야 할 미청구 공사액도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0대 건설사의 미청구 공사액은 약 19조59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가량 증가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모두 올해 건설 경기 전망에서 건설 투자가 작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