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만큼, 약속한 만큼 보상을”
SK하이닉스는 그동안 노사대표 공동협의를 4차례 진행해왔지만 성과급 지급률에 대한 이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가장 최근 회사가 제시한 안은 초과이익성과급(PS) 1000%에 특별성과급 450%를 합친 1450%였다. 하지만 노측은 연간 영업이익 20조원을 기록한 2018년 1500% 수준의 성과급을 받은 만큼 23조원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지난해 보상은 더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서왔다.
여기에는 현재 고대역폭메모리(HBM) 세계 시장을 이끄는 SK하이닉스의 상황, 과거 성과급 논란 역사, 반도체산업의 특성까지도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업턴과 다운턴 사이클이 반복되는 반도체산업 특성상 침체기에 접어들어 적자가 심화할 땐 PS는 빈봉투가 될 가능성이 높다. 7조730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2023년 PS는 0%였다. 노조의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HBM 성공으로 시장에서의 지위가 급상승하며 역대 최고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만큼 성과급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수준 또한 높아졌다. 특히 과거 최태원 회장의 연봉 반납 사건까지 이어진 2020년 성과급 논란 이후, 노사는 기준이 불분명하단 비판을 받던 기존의 EVA(경제적부가가치)제도를 폐지하고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활용해 지급한다는 기준을 새로 세웠다. 그런 만큼 이 원칙에 맞게 지급률을 결정하라는 것이 직원들의 요구였다. 영업이익 23조원의 10%는 2조3000억원인데, 전체 직원 3만2000명에게 1450%의 성과급을 지급하면 이 돈 보따리가 남는다는 계산에서 나온 주장이다.
이면엔 극심한 반도체 인력난
이번 성과급 논란은 반도체업계의 인력난과도 관련이 있다. 반도체 업계 인력시장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사람이 귀한 상황이다. 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엔 국내 반도체 인재가 약 30만명가량 부족할 거라고 예상한다. 과거에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로의 이직이 흔했다면, 최근에는 반대 이동이 느는 추세다. 업계 지위가 상승하고, 삼성보다 비교적 기업문화가 자유로우며, 성과에 대해 잘 보상해주는 SK하이닉스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또한 HBM 후발 주자인 미국 마이크론과 중국 메모리 기업들 역시 한국 반도체기업 직원들에게 높은 연봉과 해외체류 조건을 제시하며 유혹하는 상황이기에 직원들은 성과급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의 11년 차 한 엔지니어는 “미국 기업을 가면 연봉이 몇배 뛰는데 최대실적이 나왔다는 지난해에도 고작 몇% 더 안 주겠다면 이 회사에서 대체 언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어떤 고민 있었나
이런 상황을 알지만 향후 미래를 대비 해야 하는 회사 입장 역시 고민은 깊었다. 투자를 꾸준히 해야 하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잘나갈수록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 전폭적으로 돈을 쏟아부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운턴에 버틸 체력도 비축해야 한다. 현재 HBM 강자로서 누리는 영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17일 발행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향후 후발사업자들이 기술격차를 따라잡고 각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이 장기화될 경우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수급불균형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우려했다.
SK그룹 전체의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SK는 2023년 말부터 그룹 차원에서 고강도 리밸런싱(사업구조개편)을 통해 인력감축, 운영효율, 비용절감을 진행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아무리 잘나가는 효자 계열사인 SK하이닉스도 그룹 전체의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라며 “지난 인사 때도 승진자 절반가량이 하이닉스에서 나오고 나머지 계열사는 승진자도 대폭 줄였는데 성과급마저 많이 준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