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인근 한 쿠키 가게에 '경찰 아저씨! 맛있는 커피 팔아요. 더 맛있는 쿠키도 팔아요'라고 적힌 팻말이 설치돼 있다. 이아미 기자
"오픈한 지 3주 됐는데 오늘 구운 쿠키 다 버렸어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옆에서 쿠키 가게를 운영하는 류모(65)씨는 가게 앞에 ‘경찰 아저씨! 맛있는 커피 팔아요. 더 맛있는 쿠키도 팔아요’라고 적힌 팻말을 꺼내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류씨의 가게는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기일 출석을 앞두고 경찰이 헌법재판소 주변 도보 출입을 통제하면서 손님 발길이 끊겼다. 그는 “하도 사람이 안 다니니 경찰이나 헌재 직원에게 판매하려고 팻말을 만들었다”며 “헌재 사수하는 것 이해 못 하진 않지만, 결국 죽어나는 건 자영업자 뿐이다”고 하소연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인근 골목길 식당들은 점심시간이 한창인데도 인적이 드문 모습이다. 최혜리 기자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기일 진행되는 헌재 앞과 안국동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윤 대통령 출석을 전후로 안국역 5번 출구 일대에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리자, 경찰은 소요 사태를 막기 위해 헌재 앞 거리 출입을 완전히 차단했다. 경찰 차 벽까지 설치돼 이날 재동과 안국동 일대에는 유동인구가 사라지고 상점들의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은 다음 달 13일까지 예정된 다섯 번의 변론기일에도 대통령이 모두 출석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기일이 열리는 날 뿐만 아니라 매일 헌재 앞 집회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질 전망이다.
21일 오후 5시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인근 한 식당 유리창에 임시 휴관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 있다. 이아미 기자
3차 변론기일이 열린 21일에도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재동초등학교까지 약 200m 구간이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전면 통제됐다. 경찰이 만든 질서 유지선 안쪽에 위치한 가게들은 테이블이 텅 비었고, 한 식당은 아예 ‘임시 휴관 안내’ 종이를 붙이기도 했다.
항상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는 SNS ‘핫플’ 베이커리 카페 직원은 “평소라면 대기 줄이 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통행 자체가 안 되니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오후 교대로 출근할 때도 시위 때문에 길이 막혀 지각했다”고 말했다. 20년째 안국동 골목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A씨는 “오늘 매출이 30~40% 떨어진 데다 저녁에 10명으로 예약한 손님도 방금 예약을 취소했다”며 “앞으로 시위가 계속된다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1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뒤편에서 택배 기사가 손수레를 사용해 택배 배송을 하고 있다. 이날 경찰 버스가 헌재를 둘러싸면서 트럭 등의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다. 이아미 기자
헌재 주변을 우회해야 하는 행인, 주변 상인들도 불편을 호소했다. 이날 골목마다 20여명씩 배치된 경찰은 시민들에게 일일이 행선지를 물었다. 의류 편집숍에 들른 박모(27)씨는 “쇼핑하러 왔는데 출입이 막혀 당황했다”며 “경찰이 직접 옷가게까지 데려다줬다”고 말했다.
헌재 뒤편에서 물건을 배송하던 한 택배 기사는 트럭으로 진입할 수 없어 손수레에 택배 박스 10여 개를 싣고 이동해야 했다. 인근에서 건강식품 상점을 운영하는 B씨는 “오늘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택배로 꼭 보내야 했는데 결국 못 부쳤다”고 말했다.
이아미·최혜리 기자 lee.ahm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