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의회가 혼인 최저연령을 현행 18세보다 훨씬 낮춰 경우에 따라 9세 어린이까지도 결혼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현지 여성·아동 권리 운동가들은 강력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통과된 새 법률이 시행되면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법원이 결혼·이혼·상속 등 가정 사건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큰 권한을 갖게 된다.
현행 이라크 법은 1959년 제정된 '개인지위법'에 따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인 최저연령을 18세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를 통과한 개정 법률안에 따르면 성직자들의 율법 해석에 따라 10대 초에 여자아이들을 결혼시키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이라크에서 상당한 세력을 지닌 시아파 일부가 신봉하는 자파리 학파의 해석에 따르면 심지어 9세 어린이도 혼인이 가능하다. 수니파 율법으로는 혼인 최저연령이 15세다.
이런 법률 개정을 주장한 보수 시아파 의원들은 법을 이슬람 원칙에 맞추고 이라크 문화에 대한 서방의 영향을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인권운동가들은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비난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 법안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온 변호사 모하메드 주마는 가디언에 "이라크에서 여성 권리와 아동 권리의 종말이 왔다"고 말했다.
이라크 기자인 사자 하심은 성직자들이 여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게 된 것은 두려운 일이라며 "여성으로서 나의 삶에 온갖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인권운동가이며 이라크여성연맹 회원인 인티사르 알-마얄리는 이번 법률 개정안 통과가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들을 결혼시키는 것은 아동으로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며, 성인 여성들에게는 이혼, 양육권, 상속권 등의 보호 기제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률 의결 투표의 적법성을 놓고도 다툼이 일 조짐이다.
투표는 논란이 큰 법률안 3개를 한꺼번에 표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투표 후 투표절차에 관해 일부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3개의 법률안은 의회 내에서 지지세력 분포가 서로 달랐다.
이라크 의회 법무위원회 소속 알리아 나시프 의원은 이번 법률안 의결 투표가 출석 의원 수가 의결 정족수에 미달하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라크 연방법원에 소송을 낼 것이라고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밝혔다.
아동 결혼은 이라크에서 고질적 사회문제다.
2023년 유니세프 조사에 따르면 현지 여자아이들의 28%가 18세 미만에 결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