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등 ‘관계성 살인 범죄’ 분석한 총경…“위험성 과소 평가”

왼쪽부터 신당역 살인 전주환, 송파 전 연인 가족 살인 이석준, 중구 오피스텔 살인 김병찬, 제주 전 연인 중학생 아들 살인 주범 백광석. 중앙DB

왼쪽부터 신당역 살인 전주환, 송파 전 연인 가족 살인 이석준, 중구 오피스텔 살인 김병찬, 제주 전 연인 중학생 아들 살인 주범 백광석. 중앙DB

현직 경찰 총경이 신당역 살인사건과 같은 지인·연인 등 ‘관계성 강력범죄’를 분석해 위험성을 판단하는 경찰 체크리스트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게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임만석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안전과장(총경)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우수등재학술지인 한국행정학보 2024 겨울호(58권 4호)에 ‘강력범죄 예방을 위한 위험성 평가에 관한 연구: 다중사례분석을 활용하여’란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임 총경이 논문에 사례로 제시한 관계성 강력범죄 사건은 ▶전주환 사건(서울 중구 신당역 살인) ▶이석준 사건(서울 송파 전 여자친구 가족 살인) ▶김병찬 사건(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 ▶백광석(제주 전 연인 아들 살인) 등 4건이다. 네 사건 모두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 또는 그 가족이었다. 또한 여성이 결별을 요구하자 남성이 분노하고 강하게 집착한 사전 정황이 공통으로 확인됐다. 가해자 4명 모두 피해자에 대한 협박, 스토킹, 폭력성 범죄로 인해 다수 경찰에 신고된 이력이 있었다.

임 총경은 “경찰의 위험성 평가와 안전조치 측면에서 4건 모두 가해자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안전 조치도 살인 의도로 가득한 가해자로부터 피해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에 역부족이었다”며 “범행 대상이 가족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음을 예측하지 못해 안전조치가 미흡했던 것도 아쉬운 지점”이라고 했다. 

임만석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안전과장이 한국행정학보에 게재한 강력범죄 예방을 위한 위험성 평가에 관한 연구 논문 발췌. 서울 중구 신당역 살인 사건 등 4건의 강력범죄를 관계·상황과 가해자/피해자, 살인 경과로 구분해 통합 분석했다. 논문 캡쳐

임만석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안전과장이 한국행정학보에 게재한 강력범죄 예방을 위한 위험성 평가에 관한 연구 논문 발췌. 서울 중구 신당역 살인 사건 등 4건의 강력범죄를 관계·상황과 가해자/피해자, 살인 경과로 구분해 통합 분석했다. 논문 캡쳐

2022년 9월 14일 발생한 전주환 신당역 살인 사건의 경우 경찰이 안전조치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점 등이 살인을 막지 못한 이유로 짚었다. 김병찬의 서울 중구 오피스텔 전 연인 살인 사건에선 경찰이 2021년 11월 7일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 임시 숙소 지원, 접근금지 등 안전조치를 했으나 불과 12일 만에 발생한 살인을 막지 못했다.

 
임 총경은 “스마트워치와 맞춤형 순찰을 중심으로 한 현행 안전조치는 추가 범행을 막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 때문에 현행 위험성 평가 도구 및 피해자 보호 체계를 검토해 구체적인 체크 리스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는 점수 계산 방식으로 총 28개 문항 중 ‘예’로 체크한 문항 개수를 합산해 13 이상이면 위험도가 매우 높음, 8~12는 높음, 4~7은 보통 등으로 판단한다. 임 총경은 체크리스트에 ‘여성의 결별 요구에 따른 남성의 강한 집착’을 명확한 문항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 결과 이 요인이 가장 중요하고 선명한 위험성 요인으로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고위험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구속,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만석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안전과장. 손성배 기자

임만석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안전과장. 손성배 기자

임 총경은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 여성보호계, 피해자보호계를 지휘하는 남부경찰청 여성안전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6년 강원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2021년 경찰청 범죄피해자보호담당관, 2023년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 국비 유학을 기회로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에서 범죄학 석사학위를, 지난 2023년 고려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아 치안행정 현장 실무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임 총경은 “경찰뿐 아니라 전 공직 사회에서 재난 등 공공행정 분야를 예방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에 쓴 논문”이라며 “예방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평가와 포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공직사회의 에너지를 사후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유도할 수 없다. 살인의 개연성이 큰 사건을 사전 예방한 경찰관에게 사후에 살인범을 검거한 경찰관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포상을 수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