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해 성사됐다. 동맹인 일본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취임 초기에 회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부른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에 일본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시바 총리가 특유의 ‘장황한 설명 방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회담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다.
이시바 총리는 논리적으로 길게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에도 “(잘) 설명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은 이시바 총리의 통역을 맡을 다카오 스나오(高尾直) 외무성 일미지위협정실장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그는 아베 정부 당시 약 8년이나 정상외교 통역을 맡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화법으로 신뢰를 받았다. 일본 정부가 고위 관료를 통역사로 기용하는 건 이례적이다. 다시 한번 ‘다카오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는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을 때다. 관계가 원만했던 아베 정부 시절에도 일본 측 참석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이 불쾌해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전, 미·일 간 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다양한 패턴을 예상하며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까지도 실무진과 준비를 거듭했다고 한다.
트럼프 1기 정권부터 외무성에서 요직을 맡아온 한 고위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화를 낼 수 있다. ‘트럼프 극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말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가 워싱턴에 가져갈 가장 큰 ‘보따리’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발표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인 알래스카주(州)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일본이 협력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에너지 개발 규제를 철폐하고, 알래스카에서의 가스 개발을 전면 재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여기엔 ‘태평양 지역 내 동맹국에 대한 LNG 판매 및 운송’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실상 일본과 한국의 직접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까지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일본도 ‘관세 폭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주요 무역적자 상대국 가운데 중국이 2791억 달러(약 404조원)로 가장 크고, 일본은 멕시코·베트남·독일에 이어 5위(716억 달러·약 103조원)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에 대해서도 최소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의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현실상 당장은 2% 이상 증액이 어렵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는 2027년까지 GDP 대비 2%로 증액하기로 결정했지만,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를 놓고 구체적인 시행 시기를 정하지 못했다.
와타나베 쓰네오(渡部恒雄) 사사카와 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하게 여기는 LNG 구매 확대 발표를 통해 추가 관세를 피하고, 방위비 증액 등 다른 요구를 무마하려는 전략을 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