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09/651d4930-3c19-4165-8585-4c9bca96b80f.jpg)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책을 쓰면서 ‘내 이야기에 누가 공감이나 해줄까’ 싶었는데, 7000마일 떨어진 한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350석 강연에 2000명이 신청해 추첨을 했다. 제주ㆍ창원에서도 왔다. 강연 후 사인회만 1시간 반을 넘겼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5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42)가 독자들과 만났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장진영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09/5c4ebba5-c376-4577-a33c-fc2d03f7e0fa.jpg)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장진영 기자
‘뉴요커’ 마케팅 담당자였던 저자는 25세 때 형을 암으로 잃은 뒤 직장을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이 됐다. 맨해튼의 마천루 사무실에 앉아 이메일에 답하는 일상이 무의미해 보였다. 제복의 익명성 속에 숨은 채 가만히 서서 10년을 보냈다. 그 상실ㆍ예술ㆍ치유의 회고록은 처음 출간된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10만부 이상 더 나갔다. 브링리는 “책에서 다룬 예술ㆍ아름다움ㆍ상실이라는 주제에 여러분들이 공감해줬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첫날인 지난 5일 그는 북한산에 올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반가사유상 두 점만 전시된 ‘사유의 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 시절의 패트릭 브링리. 사진 웅진지식하우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09/6ba970f8-0943-438f-a4d8-9d8307a4e8b3.jpg)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 시절의 패트릭 브링리.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강연에서는 연간 750만명이 찾는 메트로폴리탄에서 그가 경비원으로 출퇴근했던 후문으로 들어가 첫 근무지였던 옛 거장 회화관으로 독자들을 안내했다.
여러분은 이메일에 답하거나 뭔가 성취하면서 바삐 나가겠지만 저는 10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 일이었으니까요. 아무 것도 손에 들지 않고 고개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제 역할이었습니다.”
이어 “미술관에서 조용히 작품을 볼 때도 ‘우리가 작고 미미하구나’ 느끼게 된다. 한편으론 ‘이 모든 명작을 만든 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자부심도 생긴다”며 “예술에 대해 공부하는데 그치기보다 예술로부터 배우길 권한다”고도 덧붙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 시절의 패트릭 브링리. 사진 웅진지식하우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09/c798d1ba-daf9-4472-a34a-605fd4502a0e.jpg)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 시절의 패트릭 브링리.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수학여행으로 파리 루브르ㆍ오르세 미술관으로 학생들을 인솔할 계획이라는 고교 교사의 질문에는 “친구와 다니면 일상적 대화를 나누게 될 테니 혼자 돌아다니며 조용히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보라. 그러다가 나를 잡아끄는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두고 그 작품과 관계를 맺어라. 작품이 주는 인상을 부담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라”고 당부했다. 독자와의 만남을 마친 그는 독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재빨리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강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작가가 되는데 최고의 직업은 경비원이었던 것 같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인생이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시라”고 말했다.
![8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강연에서 청중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 권근영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09/dcb170b7-5a06-4aa7-bcc1-f361defbcbd2.jpg)
8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강연에서 청중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 권근영 기자
늘 메모하나, 책 쓸 때도 그랬나.
“근무 6년 차쯤에 처음으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작은 노트를 넣어둔 채 흥미로운 얘기를 엿듣거나 하면 적어두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쓰고 또 썼다. 처음엔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의 미술관 가이드’ 같은 걸 생각했다. 전시장 이면의 모습이나 작품을 둘러싼 에피소드 같은 걸 쓰다 보니 뒤죽박죽이 됐다. 나만의 목소리, 좀 더 개인적인 방식으로 예술에 관해 쓸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경비원 근무를 마무리할 때 즈음 ‘이런 얘기가 되겠구나’ 구상했고, 책 계약 후 탈고까지 1년 반이 걸렸다. 형에 대한 이야기, 상실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 완성됐다.”
![8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강연에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인간의 유한함, 상실의 아픔을 예술로 구현한 ‘피에타’를 보여주고 있다. 권근영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09/e2424225-9757-418b-bd8a-3b865dcb5b50.jpg)
8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강연에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인간의 유한함, 상실의 아픔을 예술로 구현한 ‘피에타’를 보여주고 있다. 권근영 기자
첫 책으로 41세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책이 삶을 어떻게 바꿨나.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렇게 한국에도 와 있고, 미국 내에서도 여러 미술관 다니며 강연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일상에서 제일 많이 하는 건 9살ㆍ11살 두 아이의 아빠 노릇이다. 집을 치우고, 요리와 빨래를 할 땐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생각은 잘 안 든다. 쓰는 것이 일이 됐고,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하며 다른 책을 쓰려 노력 중이다.”
두 번째 책은 무슨 내용인가.
“보는 것, 예술을 보는 관점에 대한 책이다. 예술 앞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대면하고, 나만의 관점 갖기. 예술을 어떻게 볼 건지, 나아가 세상을, 나무ㆍ산ㆍ새ㆍ도시풍경을 어떤 관점으로 볼 수 있을 지에 대해 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미술관에 머무는 것도, 결국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다. 현재 그는 뉴욕의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책은 1인극으로 각색해 지난해 말 초연했고, 올봄부터 매일 공연한다. 두 달 넘게 무대에 올라 경비원 시절의 자신을 연기한다. 책에서 그는 미켈란젤로가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그날의 밑작업을 해내며 570일을 보낸 끝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완성한 이야기를 썼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노동의 겸허함을 말했다.
하루의 일, ‘조르나타’에 대해 썼다. 요즘 당신만의 조르나타는.
“매일 뭔가 쓰고자 한다. 하루 중 일정 시간은 인터넷도 끊고 글쓰기만 한다. 미켈란젤로가 ‘조르나타’, 매일 하루의 일을 한 끝에 시스티나 천장화 같은 명작을 완성했다. 결과물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루의 일, 과정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려 한다.”
형을 잃은 슬픔에 빠진 25세의 자신을 다시 만난다면 뭐라고 해 주고 싶은가.
“처음 받아보는 질문인데, 아무 말도 안 할 것 같다. 누군가의 지혜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경비원처럼 그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25세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