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휘발유가격 1800원인데 정유사는 왜 한숨?

2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1890원에 판매하고 있다.  뉴스1

2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1890원에 판매하고 있다. 뉴스1

국제 유가가 꾸준히 오름세였지만 정유업계는 웃지 못했다. 부진한 실적 탓이다. 그간 유가 급등으로 정유사 이익이 치솟을 때마다 ‘횡재세를 내라’는 요구가 나왔지만, 이런 요구도 요즘엔 쏙 들어갔다. 원화값 하락(환율 상승)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정유사 곳간이 예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2월 첫째주(3~7일) 서울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리터(L)당 1801.8원이다. 최근 3주 연속 서울 평균은 1800원대에 머물렀다. 10일 오전 10시엔 1797.77원으로 약간 주춤했지만, 정유업계는 휘발유 가격이 다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국내 기름값은 국제 유가가 상승하던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국제 휘발유 평균가는 배럴당 84.47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5개월 이래 최고 수준이었다. 고물가 흐름의 정점을 찍었던 2022년 이후 3년 만에 ‘휘발유 1800원대 시대’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유사는 저유가 시기에는 하락분을 ‘찔끔’ 반영하면서 국제 유가가 오르면 상승분을 가격에 대폭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가가 하락했던 때에도 정유사들은 세금·시차 등 이유를 들며 소폭 인하를 합리화했다. 시민단체 석유시장감시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3월 국제 휘발윳값이 L당 172.89원 내리는 동안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89.03원 하락하는 데 그쳤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름값 중 세금 비중이 적지 않아 국제 유가 하락분을 그대로 휘발유 가격에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연장시행되는 등 세금 비중마저도 줄었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는 리터당 698원으로 원래 세율인 820원보다 약 15%인하된 수준이다.

지난 2022년 1835원을 기록한 휘발유 가격. 뉴시스

지난 2022년 1835원을 기록한 휘발유 가격. 뉴시스

그러다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은 2022년 상반기 정유 4사는 고유가 바람을 타고 동시에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이때 4개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14조1727억원으로, 전년(7조2333억원)의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그러나 최근 2년새 실적 그래프는 확 꺾였다. 지난해 각사 영업이익은 에쓰오일 4606억원, SK이노베이션 3155억원, HD현대오일뱅크 2580억 원이다. 2022년 영업이익의 10% 또는 그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GS칼텍스는 실적 공개 전이지만,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의 실적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는 매출 47조6460억원, 영업이익 5460억원 선이다. 전년 대비 연간 영업이익이 67%가량 줄어들 거란 전망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런 변화는 최근 급등한 환율 영향이 크다. 원화 가치는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달러당 1400원대까지 떨어진 이후 고환율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는 달러로 원유를 수입한 뒤 정제해 판매하는 구조라, 환율이 오른 만큼 원유 구매 비용이 올라 외환 부채가 커졌다는 의미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정유사의 환차손(결제 시점 환율 상승으로 인한 손실)이 급등해, 휘발유 가격이 1800원대로 올라도 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은 떨어졌 것”이라고 언급했다.

경기 침체도 정유사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정유사들은 고유가에 경기까지 침체돼 소비가 위축되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석유 판매가에서 원재료비를 뺀 나머지)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소비가 활성화되며 제품 수요가 늘던 2022년과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며 “경기침체로 수요가 늘지 않아 근본적으로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